극장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해서 5분쯤 지났을까. 10초간 스크린이 온통 검게 변한다. 대학 캠퍼스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TV를 통해 전하는 대목이다.

9일 개봉한 영화 '러덜리스(Rudderless)'를 보면서 한쪽 끝과 다른 쪽 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비극적인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피해자 입장에서 그 비극을 바라본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가해자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러덜리스’에서 샘(오른쪽·빌리 크루덥)과 쿠엔틴(안톤 옐친).

잘 나가던 광고 기획자 샘(빌리 크루덥)은 뜻하지 않은 아들 조시(마일즈 헤이저)의 죽음으로 과거를 숨긴 채 요트에서 먹고 자는 신세다.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즐겨 찾는 클럽에 갔다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음악을 꿈꾸는 청년 쿠엔틴(안톤 옐친)은 그의 노래에 꽂혀 밴드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 영화 제목이 그 밴드 이름이다. '러덜리스'는 키를 잃은 배처럼 어쩔 줄 모르는 상태를 뜻하는 낱말. 아들의 죽음으로 방황하는 샘에 대한 비유다.

숨어 지내는 그에게 전처가 찾아와 상자를 부려놓고 간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한 음악의 흔적이다. 기타며 상자를 쓰레기통에 처넣던 아빠 눈에 아들과 찍은 사진이 보인다. 배로 가져와서 아들이 남긴 노래를 듣는다. 생계인 페인트칠을 하면서도 듣는다. 아빠의 노래는 그렇게 시작된다. "멀리 떠나갈수록/ 더 깨달을수록/ 집으로 가고 싶네~"

아빠를 겉돌게 하는 아들, 아들이 두고 간 음악이 아빠를 붙잡아준다. 샘과 쿠엔틴이 밴드를 꾸리고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 때문에 점점 유명해진다. 전반부에서 샘이 조시의 음악으로 새 삶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면 후반부는 그가 남긴 노래 때문에 밴드가 위기에 빠진다. '비긴 어게인'(2013)처럼 정교하지도 폭이 넓지도 않지만 가슴이 서늘해진다.

'파고'에서 눈물겨운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기억되는 윌리엄 머시의 연출 데뷔작이다. 영화에 잠깐 등장하는데 믿음직스럽다. 105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