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 도라산에 철길이 열려 개통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국민이 머지않은 날 개성은 물론 평양 가는 철길이 뚫려 기차를 타고 북쪽 땅 산과 들을 볼 수 있겠다는 희망에 들뜬 적이 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서울역에서 북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김중배와 이수일 그리고 심순애가 사랑을 속삭였다는 대동강변을 찾아간다는 들뜬 마음으로 임진각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내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글귀였다. 달리고 싶다는 철마를 타고 임진강 철교를 건너 도라산역에 도착했으나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철마의 발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곳에서 물끄러미 북녘 하늘을 바라보고 돌아오려는데 마음 한구석으로 텅 빈 공허감이 오뉴월 오한처럼 몰려왔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매표소 직원에게 "죽기 전에 부인 손을 꼭 잡고 평양을 가고 싶으니 기차표 두 장만 파세요"라고 했다. "대동강도 모란봉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역원은 "이곳이 종착역이다"고 했다.
결국 지척인데도 프랑스 파리나 영국의 런던보다도 더 멀어진 평양을 갈 수 없었다. 저 멀리 있는 런던 템스강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고 알프스의 허리 융프라우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으나 안타깝게도 우리 땅 우리 민족이 사는 평양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북한에 일가친척은커녕 친구 하나 없는 내 심정이 이럴진대 그곳에 고향을 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싶어 마음이 아려 왔다.
우리에게는 분단의 아픔 못지않게 통일의 염원이 있다.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다. 설령 내 생애에 그날이 오지 않아도 평양이든 함흥이든 신의주이든 그곳에 가는 기차표를 판다면 지금 예매해두고 싶다. 예매를 해두었다가 통일이 되고 기차가 오가는 날 기차를 타고 그곳을 여행하고 싶다. 통일이 되는 날 부산에서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 신의주, 원산, 함흥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 표만 사면 된다. 내 살아생전 통일이 되지 않아 타보지 못하고 휴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팔기만 하면 기념으로 사두고 싶다. 오래오래 보관하면서 언젠가 기차를 타고 평양에 다녀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고 싶다.
정부가 평양 가는 기차표를 판 그 돈을 통일 기금이나 통일 비용으로 쓴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통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평양행 기차표를 판다면 도라산을 방문하는 사람들 너도나도 기념으로 기차표를 사리라 생각한다. 정부는 훗날 통일이 되었을 때 기차를 타고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기회만 제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