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속도 110㎞/h의 고속도로에서 A차량이 추월차로인 1차로에서 110㎞/h에 맞춰 정속 주행을 하고 있다. 이때 뒤에서 B차량이 130㎞/h로 달려와 바짝 붙이곤 비켜달라며 상향등을 깜빡인다. 규정 속도를 지키며 운전 중인 A차량이 과속으로 주행하는 B차량을 위해 차로를 변경해줘야 할까.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대부분 운전자가 겪는 딜레마다. 본지 취재팀이 인터뷰한 운전자들의 답변은 제각각이었다. 평소 영동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박모(58)씨는 "규정 속도를 지키며 운전하는 내가 과속 차량을 위해 비켜줘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모(33)씨는 "비켜주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왜 비켜줘야 하나 하는 생각에 짜증이 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규정 속도를 지킨다면 어느 차로로 달려도 된다'는 운전자들의 인식이 지정차로제 정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규정 속도를 넘어 130㎞/h로 달리는 B차량은 속도위반으로 단속 대상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A차량이 1차로에서 계속 주행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B차량의 속도위반 여부와 상관없이 A차량은 추월차로를 비워줘야 한다. 고속도로의 대원칙은 '2차로 이하 주행차로에선 정속 주행하고, 빨리 가고 싶은 차량은 추월차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로를 가리지 않고 모든 차로에서 정속 주행을 하면 빨리 가고 싶은 차량 역시 모든 차로에서 추월을 시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좌우 어느 쪽에서 추월 차량이 끼어들지 몰라 정속 주행하는 차량도 긴장하며 '방어 운전'을 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지만 관계 당국에선 방치 상태다. 속도위반과 달리 지정차로제 위반은 특정 지점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적발이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