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돈이 많아 한계에 다다른 채무자가 돈을 더 빌리면 사기일까. 검찰은 돈을 빌릴 당시 수입보다 빚이 많으면 사기 혐의로 기소하는 경우가 많다. 검찰은 돈을 빌린 후 개인회생 절차를 밟아도 애초 돈을 갚을 의사가 없었다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법원은 돈을 빌릴 당시 재무상태 보다는 갚을 의사가 있는지를 사기 유무죄를 판단하는 잣대로 삼는다. 파산이 아닌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경우에도 법원은 채무조정 과정으로 볼 뿐 돈을 갚지 않으려 했다는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김모(57)씨 부부는 25년지기 친구 등 친인척에게 총 7000만원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사기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게 됐다. 1,2심은 유죄로 봤지만 대법원은 고의성이 없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김씨 부부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김씨 부부가 돈을 빌릴 당시 변제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빌린 돈을 갚지 못했어도 단순한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처남과 함께 여행사 사업을 하면서 2006년부터 사채업자와 친인척 등으로부터 5억원 가량을 빌렸다. 사업은 자금 사정 악화 등으로 위기에 처하게 됐다. 2007년 6월 처남이 여행사 채무 부담으로 자살하면서 경영 상황은 더 악화됐다. 김씨는 서울에 아파트 한채와 빌라 한채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시가를 초과하는 담보권이 설정돼 있는 상황에서 지인에게 돈을 빌렸다.

검찰은 김씨 부부가 재무상황이 좋지 않아 앞으로 돈을 갚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해자들을 속여 돈을 빌렸다며 사기 혐의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당시 이들이 급여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곧 들어올 돈이 있으니 바로 갚겠다” 등 거짓말을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곧 들어올 돈이 있다”고 말한 것은 급박한 재정위기에 처해 다른 수입금의 입금 예정시기에 관해 다소 과장해 표현한 것일 뿐 속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영상 어려워 채무불이행이 미리 예측된다고 해도 돈을 빌릴 당시 채무불이행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면 사기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2001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김씨 부부가 돈을 빌릴 당시 돈을 나중에 갚겠다고 진술한 것 외 돈을 갚을 수있다고 과시하기 위해 허위서류를 작성해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기망행위를 하지 않은 점도 고려됐다.

돈을 빌리고 개인회생을 신청했다고 해도 당시 돈을 갚을 의사가 있었다는 것이 인증될 경우 법원은 사기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2011년 9월 의사 김모씨는 충남의 한 대부업체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월 매출이 2000만원 정도 돼 대출금을 갚을 수 있다”고 상담을 받고 700만원을 대출받았다. 김씨는 병원경영이 어려워져 이 돈을 갚지 못했다.

검찰은 김씨가 이미 7억원 이상의 채무가 있었고 월 수입보다 대출금에 대한 이자로 지출되는 금액이 더 많았기 때문에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리더라도 이를 제대로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며 김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김씨가 의사로서 당시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던 점, 대출 당시 대출현황 등 허위 자료를 제츨하지 않은 점, 대부업체가 추가적인 채무 존재 여부를 조사하지 않은 점, 대부업체가 39% 고리의 이자를 받은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김씨가 개인회생을 신청한 것도 돈을 갚지 않기 위한 술수라고 판단했지만 법원은 판단이 달랐다. 법원은 “개인회생은 개인 파산면책과 달리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채무자가 채무금액, 변제기간을 조정해 채무를 변제하도록 하는 제도”라며 “대출 이후 개인 회생 신청을 했다고 대출 자체를 면탈하기 위한 의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