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꺼내 물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런 거 묻는 분이 꼭 있다. "어, 담배 피우시네요?" 교회 다닌다면서 뭐 하는 짓이냐는 힐난 같은데 수십 년째 내 대답은 한결같다. "그렇다고 담배 때문에 교회를 끊을 수는 없잖아요?"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한 이 말장난의 허구를 파악할 때쯤이면 이미 한 개비 피우고 난 후다. 더 따져 물을 기미가 보이면 슬쩍 한마디 보태면 된다. "곧 끊을 생각이에요(역시 수십 년째 같은)."
겨우 담배 따위로 신앙과 종교의 기준을 삼는 유치가 나는 좀 싫다. 담배 금지는 포교 초기 계몽의 측면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 소중한 돈을 연기로 날려버리는 것을 선교사들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을 것이다.
거리와 전철에서 가끔 만나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도 당시의 소산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하도 미개하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절대 교리 가르칠 생각 말고 딱 두 개만 이야기해라. 믿으면 천당, 안 믿으면 지옥." 기분은 좀 상하지만 대략 이게 정설이다.
천국도 좋고 영생도 좋다. 죽었는데 정말 천국이 있으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고 아니라고 해도 크게 분하고 난리 칠 일도 아니다. 해서 사람이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공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다.
그런데 종교의 효용이 겨우 그런 것일까. 신을 믿는다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의 폭이 깊고 넓어진다는 의미다. 그 둘을 넘어 있는 근원적인 것을 탐구한다는 뜻이다. 스피노자를 좋아하는 건 그가 자신을 이렇게 표현해서다. '신에 대한 지적(知的)인 사랑.' 그렇다고 신이 그 지(知)를 그다지 기특해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서른 중반부터 한 해는 죽는 것이 무서웠고 한 해는 늙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은 둘 다 안 무섭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를 태양신을 믿는 멍청한 종교라고 비웃지만, 뭐가 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신앙과 종교의 진짜 힘은 생로병사에 대한 수긍이다.
가끔은 한 이십 년 지나 내가 이 지구에서 소멸한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미물(微物)임을 안다는 것은 겸손의 증거다. 누군가는 가고 누군가는 오며 우주는 여전히 검고 넓을 것이다. 그렇다고 소생이 마냥 헐렁한 선데이 크리스천인 건 아니다.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전자 음향이 나는 정말 싫다. 그나마 몇 시간 경건해보겠다고 앉아 있는데 저 시끄러운 풍악은 대체 뭐란 말이냐. 헤비메탈에 할렐루야 가사만 얹는다고 찬송가가 되는 건 아니다. 이럴 때 나는 살짝 기독교 근본주의자다.
주말 아침에 종교니 신앙이니 딱딱한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건강 진단을 받고 공포에 떠는 친구 때문이다. 정밀진단을 해 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거의 사색이다.
"이참에 교회 한번 나와 볼래?" 했더니 포교도 상황 봐가며 하라면서 째려보는데 눈빛이 얼마나 살벌한지 내가 암에 걸릴 지경이다. 그럼 술이라도 마실까 했더니 그게 지금 환자한테 할 소리냐며 역정을 낸다. 미안하다 위로가 빈곤해서. 뭐 다른 게 있나 찾아보는 데 역정 끝에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덧붙인다. "술은 됐고 기도할 때 내 얘기 빼먹지 마." 약해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