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열린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행사장에는 같은 병풍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병풍은 1965년 12월 18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기본조약 비준 당시 사용됐던 한글 병풍으로, 주일 한국대사관과 주한 일본대사관이 각 6폭씩 보관해왔다.
이 병풍의 글씨는 한글 서예가 갈물 이철경(1914~89)씨가 1957년 썼다. '갈물'은 그의 부친인 항일 민족주의 교육자 이만규씨가 지어준 아호로 '가을물'이란 뜻이다. 배화·이화·진명·경기여고 교사, 금란여고(현재 이대부고로 통합) 교장 등을 지낸 교육자이자 여성학자다. 남편 서정권(1910~90)씨도 서울고 교장을 지냈다. 가수 겸 방송인 서유석(70)씨가 갈물의 둘째 아들이다.
갈물은 한글 서체인 갈물체를 만들어 한글 서예(書藝)의 경지를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궁체를 갈고 다듬은 갈물체는 단아함이 특징이다.
신명숙 갈물한글서회 회장은 갈물체에 대해 "흰 종이에 글씨를 단정히 쓰는 게 서예의 전부였는데, 선생님은 다양한 색깔 종이에 정자와 흘림체를 섞어가며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이 병풍에는 조선시대 문인 송강 정철의 가사 '성산별곡'이 적혀 있다. 성산별곡은 정철이 전남 담양에서 자연 경관과 풍류를 예찬한 작품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대부분 외교관들도 이 병풍의 존재를 처음에는 모르고 있었다"며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의 상징성을 극대화하고 화합의 의미를 다지는 차원에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50년 전 병풍을 다시 꺼내게 됐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모두 이 병풍을 배경으로 연설을 하면서 "양국관계의 미래를 위해 협력하자"는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