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해빙(解氷) 수순을 밟고 있지만, 향후 분수령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 변화 여부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8월 종전(終戰) 70주년 담화'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두 가지 사안이 어떻게 조정되느냐에 따라 한·일 정상회담을 포함한 '진정한 관계 정상화'가 이뤄질지 판가름 날 것이라는 얘기다.
관심의 초점 중 하나는 아베 담화에 식민지 지배와 관련한 사죄와 반성이 포함되느냐다. 정부 소식통은 23일 "아베 총리의 수정주의적 역사관으로 미뤄볼 때 우리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나오기는 힘든 만큼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일본 언론들은 최근 "아베 담화에는 식민지 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먀 담화(1995년)의 네 가지 핵심 키워드인 '식민지 지배' '침략' '통절한 반성' '사죄'가 빠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총리가 역사 인식에 관한 한 양보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아베가 담화에 자기 특유의 역사관을 담되, 정부 공식 의견이 아닌 개인 의견으로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의견으로 포장해 담화 발표 이후 일어날 외교적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2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그런 점을 포함해 판단하겠다"고 했다. 보도 내용을 사실상 시인한 듯한 모양새다. 과거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2005년)를 발표할 때 내각이 모두 동의하는 '각의 결정'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이 과정을 생략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각의 결정'이 아니라도 총리의 담화 내용이 정부 기관과 여당에 전달되는 건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조세영 동서대 교수는 "결국 일본 정부의 입장이 사실상 바뀌지만 공식적으로 바뀐 것을 인정하지는 않는 애매모호한 상태가 된다"고 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방침이 변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배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 소식통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다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사과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기류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자는 "상대국 정상이 하는 걸 예단해서 우리 대응 방침을 정하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 자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50주년 행사의 양국 정상 교차 참석으로 기껏 토대를 닦아놓은 관계 정상화의 길이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국 관계 진전을 위해선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서 아직 뚜렷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 담화에도 사죄 표현이 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8·15 때까지 미국·중국 등과 공조해 일본을 계속 설득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담화의 계승은 미·중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중국은 아베 담화의 내용을 보고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등 대일(對日) 정책을 짜겠다는 방침이다. 외교 소식통은 "아베는 현실주의적인 측면도 강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압박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아베 담화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베 담화의 수위와 관계없이 경제·안보 등 실리적 측면의 한·일 관계는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아베가 담화에서 '새로운 도발'만 하지 않는다면 현재 해빙 분위기가 유지될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