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경복궁이 있던 서울을 바라보는 망경암
지하철 분당선 가천대역 부근, 영장산이라는 낮은 야산 중턱에 망경암(望京庵)이 있다. 넓은 경내에서 탁 트인 북서쪽 방향을 바라보면 가까운 잠실을 거쳐 경복궁 등 조선시대 궁궐이 있던 서울 시내가 훤하게 보인다. 서울(京) 시내를 바라본다(望) 해서 옛날부터 망경암으로 불렸다.
경내 법당 옆에는 거대 암벽이 있는데 이 암벽 역시 서울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지리적 여건 때문에 특히,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의 일곱 번째 아들 평원대군(1427-1445)과 제8대 임금인 예종의 둘째 아들 제안대군(1466-1525)이 이 암벽 앞에 단을 설치하고 향을 피워서 임금의 무병장수를 북두칠성에게 비는 칠성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렇게 칠성제를 지낸 곳은 칠성대(七星臺)로 불렸다.
그 후 가시덤불로 덮여 폐허가 된 망경암을 중수(重修)한 사람은 대한제국의 관리였던 이규승이었다. 그는 조선시대의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왕실 사당인 종묘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 그러면서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의 제사를 받들고 있었다.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로운 운명 속에서 자주 독립국임을 선포
조선 후기에는 개화파와 보수파의 대립이 격화됐고 또, 일본·청·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야욕 속에 나라는 더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1895년 10월, 친러정책을 쓰던 명성황후가 45세의 나이에, 일본의 음모로 일본인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을미사변). 신변의 불안을 느낀 고종은 이듬 해인 1896년 2월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겼다(아관파천). 이에 친일내각이 붕괴되고 친러내각이 들어서는 가운데 조선에서는 주변 열강들의 이권경쟁이 가속화되었다.
러시아에서 벗어나라는 내외의 압력에, 1 년만인 1897년 2월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 왕을 황제, 왕비는 황후로 칭하면서 독립국임을 선포했다.
대한제국의 선포와 함께 고종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마애보살상
이렇게 어려운 시대적 여건 속에서 자주 독립국으로서의 대한제국 출발을 알리는 광무 원년(1897)에 이규승은 이곳 망경암의 암벽에 관음보살상을 새겼다. 황제인 고종과 황태자들, 황태자비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또,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된 명성황후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서였다. 이런 내용들이 암벽 앞에 있는 망경암비, 칠성대 중수비, 암벽에 새겨진 명문들에 담겨 있다.
그러나 나라를 보호하고 황실을 지켜 주고자 애썼던 이 보살상의 노력도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은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마애불이 조성된 지 13년만인 1910년에 대한제국은 주권을 빼앗기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작품성보다는 시대적, 역사적 의미가 더 커 보이는 마애보살
보살상은 암벽 위쪽 조그만 감실 안에 앉아 있다. 게다가 북서향의 암벽에는 하루 종일 그늘이 져 있어서 햇빛 있는 마애보살상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마애보살상은 위태롭게 돌아가는 대내외 정세 속에서도 대한제국이라는 자주 독립국으로서의 위상과 함께 황실의 만수무강을 염원하고 있어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전에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이 이곳에서 서울을 바라보면서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졌던 것처럼 서울을 향해 만든 보살상에서는 황제와 나라를 사랑하는 이규승의 마음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경복궁을 바라보고 있는 서울 중계동의 불암산 학도암에도 명성황후가 만든 마애관음보살상이 있어서 비교해 볼 만하다. 이곳 성남 망경암의 보살상보다 27년 빠른 고종 7년(1870년)에 조성됐다. 16세의 나이에 고종의 비가 되었던 그녀는 4년 후인 20세에 학도암의 거대 바위에 보살상을 조성했던 것이다. 역시 왕실의 건강과 무병장수를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이 보살상은 왕실의 후원을 받아서인지 거대한 크기에 화려한 장식 등 조성기법에서는 이곳 성남 망경암 마애보살상을 능가한다.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553-1
(도로명 주소: " 수정구 태평로 55번길 72)
▶답사 난이도: 쉬움(★★☆☆☆)
▶주변 볼거리와 연계하면 좋을 마애불 여행 1일 추천 프로그램
- 성남 망경암 마애불(하루 중)→봉국사(하루 중)→모란시장(하루 중)
▶주변 볼거리
- 봉국사: 고려 현종 19년(1028)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제18대 임금인 현종(1659-1674, 재위)이 죽은 두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두 딸의 능 부근에 있던 이 절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 모란 시장: 4, 9일에 열리는 재래식 5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