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응급실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온갖 질병의 환자 백화점이다. 환자와 보호자, 문병객 등 하루 내왕객 600여명이 뒤섞인 상황에서 메르스 수퍼 전파자와 같은 전염성 감염병 환자를 골라내 통제하기란 매우 어렵다. 바이러스 온실 속에 전염병 확산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게 응급실이다.

메르스 대량 감염 사태가 나기 전, 지난달 25일 밤 9시쯤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 여느 날처럼 배를 부여잡은 사람, 온몸에 피부 발진이 일어난 환자, 열나는 사람 등 환자들로 넘쳤다. 빈 병상에 자리 잡아 누워 있는 것만도 다행이고, 30여명은 대기석에 몰려 앉아 있었다. 여기저기서 호흡기 감염 증세로 기침 소리가 들리고, 객담 검사를 위해 가래를 뽑아 대는 환자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지만, 격리 병상은 하나도 없었다.

격리 병상 없는 응급실

고령 인구와 암 치료 환자가 늘면서 응급실을 찾는 폐렴이나 호흡기 감염 환자도 덩달아 늘고 있다. 하지만 응급실 운영 규정에 전염성 있는 감염성 환자를 초장부터 홀로 치료하는 격리 병상을 두라는 규정은 없다. 대부분의 대학병원 응급실도 격리 병상이 달랑 1개다. 그것도 주로 외상 환자용이다. 열나는 감염병 환자가 처음 달려가는 곳이 응급실인데, 전염병 방역 무방비 상태다.

메르스 발생 前엔… - 시장처럼 사람들이 몰려서 북새통을 이뤘던 메르스 발생 이전의 모 대학병원 응급실 모습. 병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감염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비말을 막을 별다른 시설도 없어 감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구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메르스 以後 - 19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 한때 환자들로 북적였던 응급실이 메르스 여파로 병원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아 한산하다. 전문가들은 “전체 환자는 메르스 이전보다 줄었지만, 호흡기 질환자를 격리할 공간은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가래가 튀는 객담 검사가 응급실 아무 데서나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메르스 같은 바이러스 폐렴은 폐포 깊숙이 바이러스가 염증을 일으킨다. 이후 감염이 위로 올라와 기관지에 염증을 일으킨다. 그래서 대개 발열 증세가 먼저 시작되고 기침은 나중이다. 이 상태에서 가래를 내뱉는 객담 검사를 다중의 공간에서 하게 되면 폐포 속 바이러스 침방울이 밖으로 폭발하듯 터져 나와 퍼진다. 커튼이라도 치고 하면 좋으련만, 환자·보호자들이 몰려 북새통인 상황에서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지기 일쑤다. 환자 보고 화장실 가서 가래 뱉고 오라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신상도 교수는 "가뜩이나 과밀화된 응급실에서는 한 환자의 균이나 바이러스가 다른 환자에게 옮는 위험이 크다"며 "응급실에 공기가 한쪽으로만 빠지는 음압 장치가 있는 객담 채취 검사실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키우는 온실

응급실이 상당수 환자의 입원 대기 공간으로 쓰이면서 각종 폐렴 치료가 응급실 공간 내에서 이뤄진다. 암 환자들은 3~4일, 인기가 많은 다인실(多人室)만을 고집하는 환자들은 5~6일씩 머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응급실에 병문안을 오는 문병객도 북적인다. 응급실이 초대형 다인실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응급실은 바이러스를 키우는 곳이 된다. 폐렴이나 기관지염 환자들에게 하는 이른바 '네블라이저' 치료를 응급실에서도 한다. 수분이 함유된 공기를 기관지 안으로 주입하는 치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관지 확장이 일어나 자칫 기침을 밖으로 하게 되면, 튀어나오는 바이러스 침방울 양이 2~3배 증가한다. 주변이 온통 바이러스 범벅이 되기 쉽다. 간호사가 환자 기관지에 가느다란 관을 집어넣어 가래를 직접 빨아들이는 흡입 치료나 검사를 할 때도 바이러스가 잘못 튀면 '균을 뿌리는 행위'가 된다.

더욱이 응급실은 사람이 밀집된 실내 공간이어서 환기도 잘 안 된다. 창문을 열어 놓을 수도 없다. 기온은 대개 섭씨 20도 안팎을 유지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실험에 따르면, 메르스 바이러스는 20도 정도 온도에 습도 40% 환경에서 최장 48시간 넘게 수명을 누렸다. 고려대의대 예방의학 최재욱 교수는 "메르스 같은 바이러스는 의료 행위가 이뤄지는 밀집한 병원 실내 환경에서 공기 속에 떠다니는 아주 작은 바이러스 침방울을 통해 전염이 될 수 있다"며 "응급실 체류 시간을 줄이고, 전염 우려 의료 행위는 격리 상태에서 할 수 있도록 응급실 운영과 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꿔야 응급실을 통해 전염병이 대거 전파되는 사건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