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했다. 미래세계의 희망은 아무런 강제와 무력없이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마을에 있다는 것. 구로시장에 문을 연 ‘구로는예술대학’에서 그 ‘오래된 미래’를 보았다.

왼쪽부터 최윤성·정근영·윤혜원·최현호.

아홉 명의 노인이 모여 살았다는 곳으로 알려진 구로(九老),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공단이 설립된 후 한국 수출산업의 메카였던 이곳은 2000년대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디지털단지’가 됐다. 수많은 공장 근로자들의 땀과 눈물과 웃음이 배어 있던 곳이 흔적만 남고, 이들이 월급날이면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새 옷을 장만하기도 했던 구로시장은 터만 남았다. 오래 닫힌 셔터에 뿌옇게 녹이 슨 자리, 청년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누구나 가르치고 어디서나 배운다’는 이들은 ‘구로는예술대학’ 멤버들이다.

“‘○○(땡땡)은 대학’이라는 단체가 있고요, 그곳을 기점으로 곳곳에서 청년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구로는예술대학’은 ‘예술’이라는 말에 반응한 이들이 모인 것 같아요.”(윤혜원)

저마다 걸어온 길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마을이 재미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면에 의기투합했다. ‘OO은 대학’ 네트워크는 2009년 사회적 기업 ‘노리단’의 프로젝트로 ‘마포는대학’이 출발이었다. 이후 강화·성북·구로 등지에서도 캠퍼스가 문을 열었고, 이제는 각각 독립된 대학으로 활동 중이다. 구로에도 마을활동가, 청년기획가 등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모였다. 우리가 어렸을 때 보았던 시장의 모습, 거기에서 느꼈던 푸근한 인심에 대한 그리움도 작용했다.

“일상에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아름다운 부분들이 있는데 그걸 표현해내는 사람이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자기 이야기를 노래로, 글로, 그림으로 보여주는 동네 예술가, 일상의 예술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중 한 사람이었으면 하고요.”(최윤성)

과연 마을공동체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궁금해 참여한 사람도 있다.

“저는 초·중·고등학교를 옆 동네에서 다녔어요. 그런데도 이쪽에는 와본 일이 없어요.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동네’가 구로의 첫인상이었죠. 이런 활동을 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경영학과를 나와서 ‘사회적 경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왜 이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어요. 지역이나 공동체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으니까요.”(최현호)

구레페 집의 메뉴판.

처음에는 주민들과 친해지는 게 과제였다. 2010년 시작한 첫 번째 강좌는 ‘마을대학 만들기학과’로 20명 정도의 청년들이 구로시장에서 대를 이어 상점을 운영하는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고 지도를 그렸다. 젊은이들이 사라진 곳에 청년들이 찾아와 ‘으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열었다. 지나가면 ‘밥 먹고 가라’며 앉히기도 했다. 시간이 쌓이고 정이 쌓인 뒤 구체화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청년 상인들이 의기투합한 ‘영프라쟈’, 누구나 와서 들을 수 있는 ‘동네예술학부’가 문을 열었다.

“‘영프라쟈’를 열기 전에 ‘간 보는 시장’이 있었어요. 시범 삼아 해보고 정식 상점을 시작했죠. 저희 어릴 때만 해도 시장에 자주 갔었잖아요. 새록새록 그때 기억이 났어요.”(정근영)

‘영프라쟈’는 구로는예술대학이 구로구청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다. 참신한 아이템이 있는가, 공동체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청년 상인을 뽑았다. 1기는 4팀으로 꾸려졌다. 시장 속의 시장 ‘쾌슈퍼’, 막 그린 초상화와 갓 구운 피자가 있는 ‘아트플라츠’, 대구시장에서 전수 받은 닭똥집 프라이드로 인기몰이 중인 ‘똥집맛나’, 그리고 구로는예술대학에서 직접 운영하는 크레페집 ‘구레페’ 등이다.

“저희가 들어온 지 3년 정도 됐는데, 상인들과 안면을 튼 다음에 가게를 시작했어요. 워낙 고령화되어 있어서인지 저희를 많이 예뻐해주세요. 응원도 해주시고 잔소리도 해주시고요. 걱정도 해주시죠. 사실 상권이 많이 죽은 곳이라 무모한 도전이긴 했죠.”(윤혜원)

영프라쟈 안에 있는 구레페는 구로는예술대학에서 운영한다.

저마다 사연도 다르다. ‘똥집만나’의 경우 처음에는 홍대에 입주했는데, 가게가 잘되자 건물주가 세를 올렸다. 높아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터를 옮겨야만 했다. ‘구레페’는 상점 주인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다.

“시장에서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 10㎡(2~3평)인데 오래 머물지 않고 가볍게 테이크아웃해서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죠. 2년 전에 배낭여행을 갔었는데 주머니에 돈이 별로 없었어요. 하루는 푸드 트럭에서 크레페를 하나 사먹었는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남편은 크레페를 굽고 아내는 뱅쇼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최윤성)

혹자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으니 부럽다고도 하고, 낭만적이라고도 하는데 이들의 삶은 도리어 치열하다. 조직 내에서 일하는 게 아니니 ‘맨땅에 헤딩’하는 경우도 많고, 모두가 담당자이다 보니 ‘멀티플레이’는 필수다. 정해진 틀이 없으니 틀을 만들어가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던 방식의 삶(윤혜원)”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저희의 삶이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고군분투해야 하는 순간도 많고요. 각자에게 맞는 대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저희가 누군가의 모범이 되는 건 경계해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누가 정해놓은 대로 살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죠. 문화기획자는 자기의 삶도 기획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윤혜원)

“제가 꿈꾸는 일이 저에게 주어진 선택지에는 없었어요. 졸업하면 취업 아니라면 창업 정도로 좁혀졌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사는 것과 말하는 것이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지금도 고민해요.”(최윤성)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이 분명 있어요. 그 외의 순간들은 모두 시행착오고요(웃음).”(최현호)

동네예술학부 수업은 어디서든 자유롭게 이뤄진다.

인터뷰를 하던 중 한 상점에 수도가 나오지 않았다. ‘물이 안 나오면 하루 장사는 공치는 것’이라 말 그대로 비상이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정근영씨는 인터뷰 중간 자리를 비웠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게 시장의 삶이다. 그 일을 해결해가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해결책을 찾아가면서 보람을 느낀다. 이 공동체 안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여기는 월세가 세지 않으니까 30~50년 대를 이어 하시던 분들도 있어요. 그러던 분들이 몇 십년간 서로 인사도 안 하시다가 저희와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친해지신 거죠. 저희가 매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니까 보람이 있어요.”(윤혜원)

영프라쟈에 이어 ‘동네예술학부’도 시작됐다. 일상이 예술이 되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구로구 전체가 배움의 장이 되고 곧 예술이 될 수 있는 대학을 꿈꾼다. 잘 만든 음악, 잘 그린 그림 말고 동네의 후미진 풍경과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는 ‘동네뮤지션학과’와 ‘동네드로잉학과’가 지난 4월 개강했다.

“사는 곳은 여긴데 일하러 가는 데는 강남, 노는 데는 홍대 뭐 이렇게 정해져 있잖아요. 마을들이 회복되었으면 해요. 구로 사는 청년들이 놀 때도 구로에서 놀았으면 좋겠어요. 이건 구로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가능하기를 바라요. 자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외로워하는 청년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으면 좋겠고요.”(최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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