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친화적이면서 사람들의 생활, 역사와 함께 한 마애불 마애불은 자연 속의 바위나 암벽에 새겨진 부처상이나 보살상을 말한다. 과거, 장인들의 정성과 공력으로 거친 바위 면을 힘들게 깎고 다듬어 만든 마애불에서는 아직도 살아 숨쉬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산의 용현리 마애3존불부터 산 속에 있어서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마애불까지 모두 나름의 개성과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마애불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낮에는 해, 밤에는 달과 별을 조명 삼아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자연친화적이다. 특히, 햇빛이 바위 표면에 비스듬하게 비칠 때 드러나는 모습은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다. 마애불은 삼국 시대부터 근세까지 약 1300년 이상에 걸쳐 조성됐다. 약 200개 정도 되는 우리나라 마애불에는 건강과 무병장수, 자식 기원, 극락왕생 기원 등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마을의 행복, 나라의 독립과 왕실의 건강 기원, 미래의 새 세상에 대한 염원 등이 담겨 있다. 옛날 사람들은 마애불을 통해서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 대신 희망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제5대 왕인 경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새겨진 마애불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 하남시의 나지막한 객산 입구에 있는 선법사 경내. 법당 옆 암벽에서 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 조그만 암벽에 새겨진 이 마애불은 거대화되는 고려 전기의 특성에 비해 체구가 작은 편이다.
마침 정오가 되면서 바위에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닿으면 뭐든지 황금으로 변하는 마이다스 왕의 손처럼 햇빛은 두드리는 바위 표면마다 금빛으로 바꾸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늘 속에서 드러난 바위의 마애불도 아름답게 빛나는 금불이 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윤곽 속에 점점이 정으로 쪼은 자국들은 마치 점을 찍듯이 그림을 그린 점묘파 기법을 사용한 듯했다. 마애불은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 약사불이다. 약사불은 중생의 병을 고쳐주고 오래 살 수 있게 해주는 부처이다. 오른쪽 옆 명문에 의하면 마애불은 태평 2년 7월 29일, 옛 석불(고석불)을 중수(重修)할 때 황제의 만세를 기원하면서 새겨졌다. 태평 2년은 중국 연호로서 고려 경종 2년(977)에 해당된다. 마애불은 왕위에 오른 지 2년 밖에 안 된 고려의 제5대 왕 경종(975-981,재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조성됐다. 그러나 이 마애불을 조성한 사람의 간절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경종은 왕 위에 오른 지 6년 만에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마애불에는 황제국으로서의 고려 역사가 남아 있고 마애불 옆 명문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경종을 왕이 아닌 황제로 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 당시 중국과 대등한 황제국으로서 고려의 위상을 보여준다.
황제라는 명칭은 나말여초의 고승인 원종대사의 부도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원종대사는 고려 광종 때에 국사(國師)의 자리에 올랐다가 경기도 여주 고달사에서 입적하였다. 이때 광종의 명으로 원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가 세워졌다. 비신(碑身)의 비문을 쓴 신하는 제4대 왕인 광종(949-975, 재위)을 황제 폐하로 호칭하고 있다. 현재 그 비신은 깨어져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고달사터에는 비신을 세우는 받침돌인 귀부와 비신의 상부에 만들어진 지붕돌인 이수(보물 제6호)만 남아 있다.
황제라는 명칭을 사용한 광종은 마애불에서 황제로 불리운 경종의 아버지다. 광종은 고려 초기의 불안정 속에서 과거제도, 노비안검법 등 개혁정책을 통해 제도를 정비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역시 당나라가 멸망한 후 50여 년 동안 5대 10국(907-960)의 혼란에 빠져 있다가 송나라가 세워졌다(960). 송나라 역시 건국 초기였던 까닭에 내부 정세는 어수선했다. 이렇듯 중국의 불안정한 내부 사정을 지켜본 광종은 이때야말로 황제국으로서의 고려 위상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려 시대에는 거란, 몽고(원) 등 외세의 침입이 많았고 내정 간섭도 많이 받았다. 고려 후기에는 원의 속국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원의 쇠퇴를 틈타 요동지역을 회복하고자 했던 공민왕처럼 자주성 회복을 위한 노력도 끊이지 않았다. 초조대장경, 팔만대장경도 외침을 받았을 때 부처님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또 하나의 노력이었다.
이곳 교산동 마애불 역시 황제의 건강과 황제국 고려를 잘 유지해주기를 대장경처럼 부처님에게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듯 했다.
▶소재지: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 55-3 (선법사 경내)
▶답사 난이도: 쉬움(★★☆☆☆)
▶햇빛에 의한 마애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시간대: 정오-오후 1시 30분
▶주변 볼거리
- 동사(桐寺) 터: 부근의 고골 낚시터 주변에 고려 시대의 동사(桐寺)라는 절터가 있다. 이 절터에는 몸매가 잘 빠진 5층 석탑(보물 제2호)과 3층 석탑(보물 제3호)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주변 볼거리와 연계하면 좋을 1일 여행 추천 프로그램
- 하남 교산동 마애불(정오-오후 1시 30분)→동사터 3층석탑과 5층 석탑(하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