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만 하사는 중공군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1월 2년 전에 먼저 입대한 동생 강영안 이등상사를 따라 자원입대했다. 강 하사는 횡성 전투, 호남지구 공비 토벌 작전 등에서 무공을 세운 후 1951년 8월 19일 북한군과 고지전이 펼쳐졌던 2차 노전평 전투에서 산화했다. 동생 강영안 이등상사는 6·25전쟁 발발 전인 1949년 입대해 웅진반도 전투, 인천상륙작전, 화령장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그 역시 1952년 10월 강원도 김화 저격능선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둘은 죽어서도 함께하지 못했다. 동생의 시신은 전투 직후 수습돼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혔지만 형의 시신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육군은 뒤늦게 발견된 형 강영만 하사의 시신을 4일 서울현충원 동생의 묘지 옆에 안장했다〈사진〉. 동생의 입대로 형제가 이별한 지 66년 만이다. 강 하사의 유해는 작년 7월 19일 강원도 인제군 무명 1052고지에서 군번과 이름이 새겨진 인식표와 함께 발굴됐다. 군은 유전자 검사를 거쳐 신원을 확인했다. 전사 63년 만이다. 이날 안장식에 참석한 강 하사의 또 다른 동생 강영재(72)씨는 "형의 유해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며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리워했던 형을 이제 좋은 자리에 모셨으니, 이제 편안하게 잠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고 강영만 하사 외에도 8사단 포병부대 관측병이던 고 김주환 이등중사, 수도사단 1연대 소속이던 고 홍재구 일병의 유해도 서울현충원에 묻혔다. 이 6·25 전사자들 역시 올해 유전자 검사로 신원이 확인됐다.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은 조사에서 "수많은 호국용사의 유해를 속히 찾아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들과 함께 현충원에 모시도록 정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