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를 여행하고 돌아온 68세 남자 환자가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로 확진된 이후 12일 만에 이 환자와 접촉한 두 명의 환자가 숨졌다. 국내에서 메르스 3차 감염자가 생기고 사망자까지 나옴에 따라 감염 확산에 대한 우려와 초기 대응에 실패한 방역 당국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지고 있다. 2003년 사스 파동과 작년 에볼라 감염으로 홍역을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체계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번 사태는 의료진, 방역 당국, 정부, 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최초 환자를 진료한 의원에서 환자의 여행 기록과 증상을 잘 살폈더라면, 또 이 환자가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고열과 호흡기 증상을 동반한 폐렴의 원인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방역 당국과 긴밀히 정보 교환을 하였더라면 2차 감염은 많이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의료는 질병의 원인을 살펴보기보다는 임상적인 증상 치료에 치중하여 간단히 문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감염병 집단 발생 시 역학조사는 최초 환자 치료 및 격리와 접촉자 감염 관리가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방역 당국의 미숙한 초기 대응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 특히 2차·3차 감염 경로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거나 치사율이나 중증도가 높은 감염병에 대한 관리는 더욱 중요하다. 더불어, 감염되어도 사람마다 임상적인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관리 기준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해야 한다. 고열 기준을 38도로 할지 37.5도로 할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보수적이고 방어적으로 해야 한다. 감염병 방역은 과잉 대응이 과소 대응보다 훨씬 낫다.
우리 방역 당국도 할 말은 있다. 2003년 사스 파동에 따라 질병관리본부가 발족하였지만 현재 역학조사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은 20명도 되지 않는다. 감염병 역학 전문가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사건만 터지면 대학 병원의 감염내과 전문의를 차출해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서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방역 체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직원 1만5000명에 예산을 11조원 정도 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보건 의료의 경찰과 소방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미국 CDC는 매년 최정예 역학조사 전문 요원(EIS)을 약 70명 양성한다. EIS는 의대 졸업생이나 역학 분야 박사를 선발하여 2년간 체계적 실무 교육을 통해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길러낸다. 역학조사 특성상 질병 원인을 수사하듯이 찾아내야 하고 필요할 땐 격리 조치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질병 수사관(disease detective)'이라고도 한다. 지난 60년간 배출된 인력만 약 4000명에 이른다. 이 중 절반만 현재 활동한다고 해도 2000명이다. 우리 질병관리본부에도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역학조사 전담 요원을 육성하고 국가 단위에서 질병 감시 체계를 총괄하는 '국립역학원'을 설립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건 의료 정책의 근본적 개선 대책을 세우면서 국민의 건강과 의료를 전담하는 제2차관 제도 신설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건강 정책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분노가 되지 않도록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자세로 접근해 주기를 바란다. 메르스는 이미 3년 전에 발생해서 국내에 유입되어 병원 감염으로 번질 것이란 점이 충분히 예견되었다. 이번 메르스와 작년 에볼라 사례는 감염병이 이제 국지적 수준을 넘어 범지구적 문제로 쉽게 확산되고, 환자 관리 소홀이 국가 간 분쟁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미 중국 정부는 중국에서 확진받은 우리나라 환자에 대해 한국의 방역 체계를 문제 삼고 있다. 국가 단위의 보건 의료 문제가 국가 간 외교 안보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