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위헌 논란'에 휩싸인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배수진'을 친 박 대통령의 이 같은 '강수(强手)'는 사실상 여당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여당은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뜻이 알려지면서 사실상 국회법 개정안을 포기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44명 중 211명 찬성'으로 통과됐다. 국회 개헌안 의결 정족수인 200명을 넘긴 여야 의원들이 찬성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거부권 시사' 발언을 통해 상당수 여당 의원들에게 '당시 표결이 잘못됐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박 대통령으로선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직접 여당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과 남은 임기 동안을 나와 함께할 것이냐, 아니면 따로 가겠느냐'를 물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물론 이번 '승부수'는 박 대통령으로서도 져야 할 위험 부담이 상당하다. 만약 여당 의원들이 김무성·유승민 등 비박(非朴) 지도부로 기운다면 당·청 관계는 회복하기 힘든 길로 접어들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의 한 참모는 "가령, 박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도 국회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대통령이 새누리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탈당(脫黨) 가능성까지 거론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한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이번 사안을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날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일로 당·청(黨靑)이 결별 수순을 밟게 된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親朴)과 비박 간의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친박 여당'과 '새누리당'으로의 분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같은 청와대의 분위기가 전달되자 새누리당 지도부는 곧바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김무성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의 거부권 시사에 대해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충분한 검토의 결과로 말씀하신 걸로 생각한다"며 "대통령과 우리 당의 뜻이 다를 수가 없다"고 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사전 얘기는 없었다. 저희도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다만 그는 거듭 시행령 수정권에 대해 "강제성이 없다"고 했고, 일각의 책임론 제기에 대해선 "그런 일이 오면 언제든지 책임지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론적으론 세 가지 정도의 선택이 가능하다. 대통령의 뜻을 수용해 국회 본회의에서 재의(再議) 절차를 밟지 않고 개정 국회법을 백지화시키는 경우다. 본회의 상정은 여야 합의로 해야 하는 만큼 여당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두 번째로는 여당 지도부가 찬성을 번복하기로 하고 환부(還付)되어 온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 투표에서 부결하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여당 지도부가 수용을 거부하고 재의를 통해 가결시키겠다고 나서는 경우다. 여당이 청와대와 갈라서서 각자의 길로 가겠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날 여당 지도부의 발언과 분위기로 봐서는 세 번째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한 여권 관계자는 "아직은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가 더 길고 새누리당 지도부도 박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을 고려할 때 그와 등을 돌린 상태에서 내년 총선을 치르려 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는 국회법 개정안을 오는 5일쯤 정부로 송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15일 이내에 국회로 돌려보내야 한다. 이달 하순이면 여당 지도부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