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파리 특파원

지난 12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는 흡사 18년 만에 동창회가 열린 듯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2기 내각'에 발탁된 27명의 장관은 첫 회의에 참석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었다. 총리가 등장하자 녹색 탁자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1997년 이후 영국에서 처음으로 보수당으로만 구성된 내각의 출범이었다. 이 장면을 영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동영상에 담아 공개했다.

자리에 앉은 장관들의 면면은 '보수당 압승'이라는 총선 결과만큼이나 의외였다. 교통장관을 맡은 패트릭 맥러플린은 광부 출신이다. 프리티 파텔 고용부 장관의 부모는 독재자 이디 아민의 폭정을 피해 우간다를 탈출한 이민자였다. 사지드 자비드 기업혁신기술부 장관도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 버스 운전사의 아들이다. 스티븐 크랩 웨일스 담당 장관은 임대주택에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공사판에서 학비를 벌었다. 애나 소브리 중소기업부 장관은 주차장 집 딸, 그레그 클라크 지역·지방부 장관은 우유 배달부 아들이었다.

영국은 '보수당=중산층, 노동당=노동자'라는 계급적 투표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국가다. 역대 각료 구성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캐머런 내각은 이런 '전통'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역대 보수당 정권에는 등록금 비싼 사립 중·고등학교를 나오고,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캐머런 자신은 이런 이력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이번 그의 내각 중 43%가 공립학교 출신이다. 이 비율은 역대 보수당 정권 중 최고라고 한다.

첫 내각 회의 캐머런 총리의 첫 발언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진짜 정당이 되자"는 것이었다. 그가 '노동자(labor 또는 worker)' 대신 '일하는 사람(working people)'이라는 용어를 택한 것은 비단 노동당이라는 당명을 의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득권 노조와 복지 혜택의 뒤에 숨은 '가짜 노동자'와 구분 짓겠다는 의도였다. 캐머런은 "모든 사람이 자랑스럽게 월급봉투를 받아 들고, 가족을 부양할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가짜 노동자'와 '일하는 사람'을 구분 짓는 기준은 뭘까? 이에 대한 해답은 늘 보수당에 비판적인 일간 가디언의 보도에서 엿볼 수 있다. 가디언은 "보수당이나 노동당 모두 노동자를 위한 윤택한 삶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보수당은 개인적 노력을 성공의 조건으로 강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캐머런 정부는 3~4세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를 위한 무료 보육시간을 주(週) 30시간으로 2배 늘리고, 소득세 부과 하한선을 높여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대신 한 가정에 지급해 온 복지혜택의 상한액을 2만6000파운드에서 2만3000파운드로 낮춘다. 적은 임금을 받고서라도 일하려는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한 조치들이다.

이런 캐머런 정부의 행보를 두고 영국에서 '블루칼라 보수당'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영국 보수당 싱크탱크인 '브라이트 블루'의 라이언 쇼트하우스는 "이번 승리는 땀 흘려 일하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람들의 기대를 읽어 낸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