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은 세계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연등 빛으로 가득 찬 ‘빛의 광장’으로 변했다.

"짝, 짝, 짝."

지난 16일 저녁 8시 24분, 서울 광화문광장. 죽비 소리가 세 번 울렸다. 그러자 일순 광화문광장은 정적에 빠졌다. 대한민국의 심장, 평소엔 늘 자동차와 사람 물결이 이어지는 곳, 때로는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갈등 현장인 이곳에 평화로운 고요가 흘렀다. 명상에 든 30만명은 지그시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열린 '한반도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한 기원대회―세계 간화선 무차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선정(禪定)에 드는 시간이었다.

이날 광화문광장은 평화와 지혜를 염원하는 빛의 광장이었다. 전국 사찰에서 모여든 불자와 연등 행렬에 참가했던 불자가 모두 이 광장에 모였다. 행사는 오후 7시쯤 동대문에서 출발해 종로를 통과한 연등 행렬이 광화문광장으로 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천왕상을 비롯해 각양각색으로 모양을 낸 대형 장식등 20여개가 광장 양편으로 도열했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면서 불자들이 손에 손에 든 연등은 부드럽게 광화문광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정부종합청사 건물 위에도 별 하나가 떠올랐다.

오후 7시 35분, 예불이 시작됐다. "지심귀명례…"로 시작하는 예불문에 이어 30만명이 합송하는 '반야심경'과 '석가모니불' 정근 소리가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졌다.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된 법고(法鼓)가 "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소리의 릴레이였다.

오후 8시 정각,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입장했다. 천진난만한 미소로 장난치는 어린 동자승 7명이 진제 스님 앞을 인도했다. 단상의 외국 스님들도 스마트폰을 꺼내서 입장하는 진제 스님과 행사 모습을 촬영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행사는 기원대회와 무차대회 두 가지 성격이 이어졌다. 그래서 단상에는 불교 각 종단 대표자 등과 한국 간화선을 상징하는 조계종의 각 선원장도 자리했다.

지난 16일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

대형 화면을 통해 조계사의 범종이 평화의 염원을 담아 5번 울리는 장면이 광장에 생중계되며 기원대회가 시작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2015 불교 통일 선언'을 발표했다. 연초부터 조계종이 머리를 맞대고 준비해온 선언이었다. 대원칙은 세 가지, 공존·상생·합심이었다.

자승 스님은 먼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으로 첫머리를 열었다. "너희는 서로 화목하고 다툼이 없으며, 물과 우유처럼 서로 어울리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돌보며 사느냐?" 이어 "부처님의 이 질문 앞에서 한반도의 불자들은 자성과 참회의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물과 우유처럼' 어울리기 위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길을 찾겠다" "공존과 상생은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합심은 마음의 본바탕인 '일심(一心)'을 살펴 진실한 의지를 합쳐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교도는 굳어져 버린 남북 관계를 풀고 민족 동질성 회복과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선정(禪定)에 이어 비구·비구니와 남녀 불자 그리고 동자(童子)·동녀(童女)들로부터 법을 청해 받은 종정 진제 스님이 법상에 올라 주장자(지팡이)를 들어 "옛 부처가 나기 전에 누가 우주의 주인공인고? 고요하고 고요해서 그 체성은 평안한지라. 온 세계가 한 집이요 정이 있고 정이 없는 모든 만물이 한 몸이로다" 하며 법어를 시작했다. 진제 스님은 "이 주인공은 천지만물의 근본이요, 일체중생의 마음자리"라며 "이 근본 자리는 텅 비어 고요함이나 분명하고 분명한 자리이다. 온갖 망령된 생각을 내려놓는다면, 바로 그 자리가 본래의 마음자리며 본래의 참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마음공부의 여섯 가지 길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를 꼽았다. 약 20여분간에 걸친 진제 스님의 법어를 마지막으로 이날 '한반도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한 기원대회-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는 막을 내렸다. 한국 불교가 광화문광장에서 이런 대규모 행사를 가진 것은 이날 행사 사회를 본 백담사 무금선원 유나 영진 스님의 말처럼 "1600년 역사상 처음"이었다.


무차대회 현장
진제 스님 법어 주요 내용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에 입장하는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진제 스님은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선문답을 펼쳤다. 사찰 그것도 선방이 아닌 곳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선문답을 펼친 것은 이번 무차대회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세 마디에 모든 성인과 모든 도인께서 설하신 법문이 다 들어 있으니, 이것을 가려낼 줄 안다면 모든 성인과 모든 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답을 하실 분 있습니까?”

지난 16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은 잠시 선방(禪房)으로 변했다.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에서 법상에 앉은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선문답(禪問答)을 던진 것. 그가 말한 세 마디는 당나라 때 도인으로 통했던 방(龐) 거사 가족이 주고받은 말. 어느 날 방 거사가 “어렵고 어려움이여, 높은 나무 위에 일백석이나 되는 기름통의 기름을 펴는 것 같구나” 하자 아내가 “쉽고 쉬움이여, 일백 가지 풀끝이 모두 불법의 진리이구나”라고 답했다. 그러자 딸은 “어렵지도 아니하고 쉽지도 아니함이여, 피곤하면 잠자고 목마르면 차를 마신다”고 했던 것. 진제 스님은 “만약 산승(山僧)이 방 거사 일가족이 한마디씩 할 때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좋은 차를 달여서 한 잔씩 드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또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이 차를 한 잔씩 드린 것은 법문을 잘해서 드린 것입니까? 아니면 잘못해서 드린 것입니까?”

깨달음이란 언어가 끊어진 자리,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지. 진제 스님은 이날 선방에서 선승들이 깨달음의 경지를 두고 주고받는 법거량(法擧量)의 일단을 보여줬다. 본래 무차(無遮)대회란 ‘누구든 참석을 막지 않는 법회’라는 뜻. 이날 대회도 세계 20개국에서 고승들이 참가하고 국내에서도 스님들과 전국 사찰의 신도 등이 차별 없이 참석했다. 진제 스님이 질문을 던졌을 때 청중석에 있던 한 스님이 일어나 “악, 악” 소리 지르며 손뼉을 쳤다. 선승으로서 공부를 점검받으려는, 혹은 진제 스님의 법문에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었으리라. 보통의 법회였다면 두 선승 사이에 법거량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워낙 많은 인원이 모인 자리라 무대 위의 진제 스님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진제 스님은 이날 법문에서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眞我]인가?’ 이 화두를 들고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챙기고 의심해야 한다. 그래서 문득 일념삼매에 들어 크게 죽었다가 홀연히 살아나게 되면 마침내 마음의 고향에 이르러 대지혜와 대안락, 대자유와 대평화를 영원토록 누리게 된다”며 간화선 수행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