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FA-50 경공격기 페루 수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중남미 4개 순방국 중 두 번째인 페루의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국내에선 한·페루 간 초대형 무기 수출 계약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두 정상 모두 향후 페루의 경공격기 사업에서 한국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강력한 뜻을 표명했다. FA-50은 국산 고등훈련기 T-50을 공격기로 개조한 모델이다. 페루는 올 하반기 경공격기 기종 선정을 앞두고 있다. 사업 규모는 기체 24대 포함, 총 2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방산업계는 "지금 양국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가능성이 꽤 높다"고 말했다.
페루가 국내 방산업계를 들썩이게 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12년 국산 프로펠러 기본훈련기 KT-1과 이 비행기를 경공격기로 개조한 KA-1 등 20대를 2억달러에 수출하는 계약이 체결됐다. 국산 무기가 남미에 진출한 첫 사례였다. 한국에서 직선거리로 1만6000㎞나 떨어진 페루가 국내 방산업계의 '고객'이 된 계기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군이 퇴역 비행기를 페루에 제공했고, 이후 두 나라의 군사적 우호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최신 무기 수출로 이어졌다. 퇴역 무기가 국산 무기 수출의 숨은 공신(功臣)이었던 것이다.
해외서 환영받는 한국 퇴역 무기들
지난 2007년 공군이 30여년간 쓰고 퇴역시킨 A-37B 공격기가 해외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았다. 1970년대 중반 20여대가 도입됐고 일부가 공군 곡예비행팀 '블랙이글스' 기종으로 운용돼 유명세를 탄 항공기였다. 가장 열렬히 원했던 나라는 페루와 파키스탄. 페루는 "마약 단속을 위한 감시·정찰, 해안·국경 경비에 쓸 계획"이라고 했고, 파키스탄은 "엔진 등 각종 부속품을 조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페루 공군참모총장은 당시 페루를 방문한 우리 측 방위사업청장에게 "꼭 그 비행기를 갖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고민을 거듭하다 2009년 말 A-37B 8대를 페루에 무상 제공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방위산업팀장은 "이를 계기로 양국 우호적 관계가 깊어졌고 KT-1 등의 수출이 궤도에 올랐다"고 했다.
우리 군이 퇴역 무기·군사 장비를 다른 나라에 본격적으로 주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주로 필리핀 등 동남아,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이 대상이었고 나중엔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확대됐다.
가격은 '헐값'이 기본이었다. 1993년 우리 군은 필리핀에 소형 고속정(PK) 12척을 넘겼는데, 총 금액은 1200달러였다. 한 척당 100달러였다. 이후 필리핀에 팔린 140~170t급 참수리 고속정 8척과 F-5A 전투기 8대, 카자흐스탄에 제공된 고속정 3척도 가격은 척당(또는 대당) 100달러였다. 군 관계자는 "퇴역했다고는 하지만 무기를 넘기면서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부담스러울 수 있어 상징적 차원에서 100달러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관계 등에 따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퇴역 무기는 상대국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군사 대국인 한국은 많은 무기를 보유해야 했고, 무기들은 시간이 지나면 최신 무기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우리 군에선 '밀린' 무기지만 조금 고치고 개량하면 다른 나라에선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양도 무기는 상대국의 주력이 됐다. 2010년 가나에 무상 양도된 참수리 고속정은 가나 해군의 핵심 전력이 됐다. 가나 해군은 보유한 10여척의 배가 모두 50t 이하 소형이었는데 하루아침에 150t급 함정을 갖게 됐다. 콜롬비아에는 지난해 1200t급 초계함(안양함)을 무상 양도했다. 우리 군이 1000t 이상급 전투함을 양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외교와 무기 수출의 디딤돌
퇴역 무기는 2000년대 후반 들어 특별한 존재로 발돋움했다. 육·해·공군 등이 자체적으로 추진했던 퇴역 무기 등 불용(不用) 군수품 해외 양도를 국방부가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군 관계자는 "2008년 5월 국방부가 불용 군수품 해외 양도를 총괄 조정하는 예규를 제정·시행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외교와 자원 개발, 방산 수출 등과 연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무기는 국제사회에서 친한 우방, 또는 앞으로 친해지고 싶은 국가에 주는 '귀한 선물'이었다. 2010년 후반 군은 캄보디아 국방부 요청에 따라 군용 트럭과 공병 장비, 항만 경비정 3척을 포함해 총 24종 223점의 군용 장비를 제공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캄보디아와 관계가 긴밀해졌고, 군사 협력 관계도 발전하는 단계였다"며 "양국 우호 관계를 더욱 다지기 위해 군사 물자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퇴역 무기가 국산 무기 수출에 톡톡한 효자 노릇을 할 것이란 기대를 받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무기 수출은 2006년 2억5000만달러에서 2007년 8억5000만달러로 급증했고, 2008년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퇴역 무기 제공도 무기 수출에 기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서우덕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초빙교수는 "무기를 주고받는다는 건 구호물품이나 일반 상품을 거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두 나라가 전략적 수준의 파트너라는 걸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며 "이런 관계가 있으면 향후 무기 수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터키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은 우리 퇴역 무기 양도국인 동시에 대형 프로젝트로 국산 무기를 구매한 '큰손' 고객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필리핀의 경우 2008년 T-41 항공기 15대를 무상 양도한 것이 6년 뒤 FA-50 경공격기 수출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채우석 방위산업학회장은 "한번 우리 무기를 쓰면 후속 군수 지원과 정비 등이 뒤따르는 건 물론, 우리 군의 무기 운용 스타일과 작전 개념 등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추후 무기 구입 때 우리 무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무기 분야에서도 '방산 한류'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