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현 특파원

비극이 휩쓸고 간 자리엔 비가 내렸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은 공포와 추위에 떨면서 비를 맞았다. 눈앞에 벌어진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멍한 표정이었다. 거리 곳곳엔 임시로 천막이 설치됐고, 이마저도 부족해 수백명이 텐트도 없이 바닥에 천을 깔고 그 위에 빽빽하게 모여 앉았다. 산악 지대인 카트만두는 4월이라도 밤은 춥다. 몸을 덮을 담요나 방수천 한 조각도 없는 시민들은 몸을 떨고 흐느끼면서 밤을 지새웠다.

규모 7.8 대지진이 강타한 네팔에선 이처럼 지진의 공포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27일은 지진이 발생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지진으로 매몰된 사람들은 최대 72시간까지 버틸 수 있다. 네팔 정부는 이 '골든 타임' 안에 한 명이라도 더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상황은 호의적이지 않다.

현지인들은 비를 머금은 건물 잔해가 무거워져 수습이 더디다고 호소했다. 카트만두에 파견된 인도 구조대원은 "통신망이 파괴돼 불통이라 어디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몰됐는지 파악조차 어렵다"고 했다. 사고 현장으로 파견 온 구호 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의 인도 지부 직원 데벤드라 탁씨는 "지진으로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도로가 유실돼 교외나 시골로는 구조 활동을 갈 수도 없고, 긴급 구호 물품을 전달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에베레스트 고지대에 있는 티베트 난민촌에는 중국에서 탈출한 티베트인 수만 명이 살고 있는데, 이들의 경우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고지대라 구조 작업이 단시간 내에 이뤄지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27일까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4000명을 넘었다고 네팔 정부가 밝혔다. 하루 만에 사망자가 1000명 이상 늘었다. 일각에서는 숨진 사람이 1만명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날 카트만두의 한 힌두교 사원에는 처음으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진 희생자들의 첫 화장(火葬)이 이뤄진 것이다. 네팔의 장례 절차는 복잡하다. 장작더미를 몇 겹 올린 다음 시신과 함께 태우고 시신이 다 타면 강물을 퍼올려 타다 남은 장작더미와 재를 쓸어서 강물로 버리는 식이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은 바람에 평소 장례 절차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다. 네팔 보건 당국은 지진 희생자를 위한 간소화한 장례 절차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했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네팔 사무소 직원 김형준(33)씨는 "그나마 카트만두 시내에서 발견된 시신만 수습하고 있을 뿐 교외나 시골에 진흙으로 지은 집에 머물다 갇힌 사람들은 구조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① 지난 25일 발생한 강진으로 집을 잃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주민들이 26일 인근 지역으로 대피해 천막 아래 앉아 실종 가족의 소식과 구호 물품을 기다리고 있다. ②대피소에서 한 소녀가 씻지 못해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천막을 붙잡고 있다. ③ 27일 전력 사정이 극도로 악화된 카트만두에서 전력선이 공급된 공터로 휴대전화를 충전하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도 아직 끝나지 않은 공포와 싸우고 있다. 26일 오후에는 규모 6.7 여진이 카트만두 부근을 다시 강타했다. 여진 당시 집을 벗어나 가족과 승용차에서 지내고 있던 현지 주민 람 바하더르 탄더카르(50)씨는 "집이 좌우로 흔들리는 걸 봤다"며 "지진이 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울먹였다. 이날 여진으로 이미 반쯤 무너져 내린 건물도 완전히 주저앉았다. 돌무더기를 헤치며 구조 작업을 벌이던 사람들은 앞선 지진의 공포를 떠올리며 일순간 사색이 됐다. 작은 흔들림에도 아이들은 엄마 품에 매달려 울음을 터뜨렸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구호 단체들이 물과 생필품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몰려든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치안 부재를 틈타 무너져 내린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인 다라하라(빔센) 타워의 벽돌을 서로 가져가려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네팔에는 사고 당시 외국인이 30만명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도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세계 각국은 자국민 생존 여부를 파악하는 중이다. 우리 정부는 네팔에 체류 중인 한국인은 650여명이며, 여행객도 1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TV조선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