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시즌 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을 보면 대체로 체격이 크지 않은 편이다. 김세영(22)·김효주(20)·박인비(27)·최나연(28) 등 올 시즌 LPGA 투어에서 1승 이상을 거둔 선수들은 대부분 키가 160㎝대다. 지난해 나란히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에서 1·2위에 오른 브리타니 린시컴(178㎝)이나 렉시 톰슨(183㎝·이상 미국)과 비교해 보면 많게는 20㎝ 정도 차이가 난다. 올 시즌 상금 순위와 다승 순위에서 상위권을 달리는 한국 선수들도 평균 비거리에서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체격에서 외국 선수에 밀리는 데도 한국 여자 선수들이 세계무대를 휩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한국 선수들이 '세밀함'과 '정신력'으로 신체적 열세를 극복했다고 보고 있다. 결정적 순간 발휘되는 한국인 특유의 승부 근성과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한국 여자 골프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세영이 최근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던 모습이 대표적인 예다. 김세영이 대회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티샷을 워터해저드에 빠뜨렸을 때만 해도 같은 조에서 경기하던 박인비 쪽으로 승부가 기울었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세영은 5m 칩샷으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연장 첫 홀에서 기적 같은 샷이글로 승부를 뒤집었다. 반면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 등 일부 외국 선수는 마음먹은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자주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곤 해 '돌부처'처럼 멘털이 강한 한국 선수들과 대조를 이뤘다.
정확한 쇼트게임 능력도 한국 선수의 선전 요인이다. 지난 시즌 데뷔와 함께 2승을 거둔 이미림(25)은 지난해 레인우드 클래식 마지막 날 공이 바위 위에 올라가자 벌타를 받는 대신 그대로 어프로치샷을 해 그린에 올린 뒤 파를 잡았다. 쇼트게임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플레이였다. '퍼트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인비는 평균 퍼트 수 부문에서 2014년 4위(29.08개), 2013년 5위(29.05개)로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나상현 SBS골프 해설위원은 "수치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위기 순간에 더 힘을 내는 정신력과 버디 찬스를 악착같이 살리는 근성이 한국 선수의 가장 큰 강점"이라며 "이런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스파르타식 훈련을 묵묵히 견디고 큰 대회 경험을 쌓았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본지가 77명의 선수·학부형·전문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점은 분명히 나타났다.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인가'라는 문항에는 ▲인내심(23명·30%) ▲강한 승부근성(19명·25%) ▲강한 멘털(19명·25%) 순으로 답했다. '체력'과 '운동신경'이라고 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타고난 신체 조건보다 훈련을 통해 단련되는 정신력이 한국 선수의 무기라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