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 한세월/성심원은 우리들의 무도장(舞蹈場)/쪼그라진 귓불/문드러진 코납작이/비뚤다 흘러내린 입술!/북 장단 없이도/건들건들!/우린 함부로 막춤을 추었다'(노충진 '우리들의 무도장' 중)

평생을 세상의 외면과 사시(斜視)의 눈초리 속에 설움과 눈물로 견뎌온 세월을 시어(詩語)로 승화시킨 한센인들의 시집 '장단 없어도 우린 광대처럼 춤을 추었다'(알렙)가 출간됐다. 천주교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운영하는 경남 산청 '성심원'(원장 오상선 신부)의 70~80대 한센 어르신 9명이 쓴 시 51편을 실었다. 한센 시인으론 '보리피리'의 한하운(1920~1975)이 유명하다. 그러나 평생 시 혹은 문학과 특별한 인연 없이 살아온 한센인 어르신들이 시집을 낸 것은 극히 드문 경우.

'성심원'이 한센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 모임'을 연 것은 지난해 초.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김성리 교수가 시 지도를 맡았다. 현재 성심원엔 한센인이 120명 있지만 자원자만 대상으로 했다. 처음엔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마음에 품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스스로 지어보는 방식으로 모임이 진행됐다. 이 모임이 1년이 넘으면서 그동안 모인 작품이 시집으로 탄생한 것.

'성심원 노(老) 시인들이 들려주는 삶과 시'라는 부제처럼 구술(口述)을 받아 타이핑하고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시집에 수록된 시와 자서(自序)엔 신산했던 그들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다. 버스를 타고 "성심원 갑니다" 했을 때 다른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 자신을 성심원에 맡기고 떠난 부모, 어릴 적 엄마의 냄새처럼 남은 로션…. 김성덕씨는 '은혼식일에 부쳐서'라는 작품에서 '비 온 뒤에 그 연초록의 싱그러움, 계절의 여왕/성모성월 한복판에서 부부의 언약을 약속한 지도/어언 25년, 지나온 9131일'이라고 부부간의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다. 시집의 표제작인 노충진씨의 '우리들의 무도장'은 성심원 축제 개막 행사에서 낭독한 시. 그는 "바깥에서 한센인들은 사회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성심원에서는 같은 처지끼리 모여 구애받지 않고 흉허물 없이 살아간다"며 "성심원에서의 생활 자체가 나에게는 마치 춤추듯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고백했다.

성심원 원장 오상선 신부는 "어르신들이 토해내기 쉽지 않은 인생의 응어리를 시로 꺼내신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며 "일반인들이 쓰는 미사여구와는 다른 몸으로 표현한 언어"라고 말했다. '시인'들은 24일 오후 2시 성심원에서 출판 기념회도 갖는다. (055)973-6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