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 문화부 기자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의 앞날을 놓고 문인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 기능 조정에 나서면서 번역원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통합된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문단에선 "한국의 본격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사업이 축소되고, 해외에서 잘 팔릴 만한 책 위주로 번역 지원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번역원이 우수 문학 작품의 번역을 지원해 왔기 때문에 문단에서 본격 문학을 창작하는 열기가 식지 않았다. 번역원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바로 한국 문학의 위기를 뜻한다."

정부는 SOC(사회간접자본), 농림·수산, 문화·예술 분야에 걸쳐 모든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번역원 존폐는 그리 큰 쟁점이 아니다. 문화예술위원회라든지, 체육과 관광 부문에서 거대 기관의 위상 변화가 더 큰 관심사다. 번역원은 1년 예산 90억원에 인원이 35명에 그치는 소규모 기관이다. 그러나 한국작가회의와 한국시인협회를 비롯한 문인 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하면서 일이 커지는 분위기다. 지난 15일 기획재정부 후원으로 열린 공공기관 기능 조정 정책 토론회엔 신달자 시인을 비롯해 여러 문인들이 방청석에 앉기도 했다. 주제 발표자와 토론자 이외엔 발언 기회를 얻을 수 없어 참석 문인들이 서운해했다. "이러려면 뭐하러 공청회를 열었나"라고 질타했다.

중국과 일본도 정부에서 번역 지원을 하지만, 독립된 번역원이 없다. 프랑스는 외무부 산하에 번역 지원 기관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번역원이 예산 규모가 더 큰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흡수되는 게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문인들은 "한국어가 아직 소수 언어이므로 번역원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반박한다. "진흥원은 책을 '수출 상품'으로 내놓는 사업을 기획하지만, 번역원은 '본격 문학'의 해외 소개에 주력하기 때문에 역할이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렇다면 유럽 문학에서 소수 언어권인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는 각각 다른 예술과는 구별된 '문학 번역 센터'를 1970년대부터 운영해왔다. 59개 언어로 번역된 노르웨이의 철학 소설 '소피의 세계'도 이런 토양에서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비하면 2001년 출범한 한국문학번역원은 이제 성장기에 진입한 셈이다. 지금껏 32개 언어권에 1042건의 번역을 지원했다. 좀 더 물을 주고 가꿔야 할 나무를 갑자기 자르거나 함부로 옮겨 심을 일이 아닌 듯하다. "문화 융성을 외치는 정부가 문화의 기초인 문학을 뒤흔들어 문단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말까지 들을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