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화면 캡처

"성완종 회장요? 인맥으로 흥하고 인맥으로 망한 분이죠. 정권 바뀔 때마다 여야를 넘나들며 그렇게 인맥을 찾아다녔는데…."

지난 12일 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지인 A씨가 한 말이다. 성 전 회장과 30년 넘게 알고 지냈다는 그는 "성 전 회장은 5공화국 민정당(새누리당의 전신) 시절부터 정치판에 발을 들였다"며 "처음엔 기업을 위해 인맥을 만들려고 뛰어다니는 젊은 사업가였지만 갈수록 야망이 커져 인맥을 만드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고 했다.

성 전 회장 지인들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1981년 대아건설을 인수하면서 청년회의소(JC) 활동과 민정당 '청년기업가 모임'에 참여하며 인맥 쌓기에 나섰다. 당시 구천서 전 국회의원, 오장섭 전 건설교통부 장관 등과 가까웠다고 한다.

이후 1990년 3당 합당(민정당·민주당·공화당) 시기 홍인길 전 국회의원 등 YS계 인사들과 친분을 맺었고, DJP연합(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 이후엔 이해찬 전 총리와도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인맥 관리의 정점은 그가 충청 지역 인사들 모임인 충청포럼을 2000년에 만들면서부터 시작됐다. 충청포럼 한 회원은 "(포럼에) 가입한 적이 없는데도 성 전 회장이 내 이름을 충청포럼 명단에 넣어 놓고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곤 했다"면서 "이때부터 광범위하게 인맥을 관리했고, 몇몇은 '성완종 장학생'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그의 역정은 순탄치 않았다. 2003년엔 김종필 총재 특보단장을 맡았고, 이듬해 총선에서 김 총재 다음으로 비례대표 2번을 받았다. 하지만 2년 전인 2002년 지방선거 때 비자금 16억원을 자민련 측에 전달했다가 국회의원 꿈이 무산됐다. 이 사건은 JP가 정계를 은퇴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12년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변웅전 최고위원의 양보로 서산·태안에 출마해 당선된 뒤 한나라당과의 합당에 나서면서 여당 의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선거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 작년 7월 당선이 무효가 됐다. 친박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과 본격적으로 친분을 쌓은 것은 이 무렵이다.

그는 최근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서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친박 인사들에게 구명 운동을 했다. 그가 돈을 줬다고 자살 직전 메모에 남긴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외면당하면서 배신감을 느끼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변 인사들은 "폭넓은 인맥을 자산으로 여겼던 그의 입장에선 상실감이 컸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