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현 특별취재부장

지난해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주목할 만한 결정을 내렸다. 스티븐 글라스라는 로스쿨 졸업생이 법조인으로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변호사 등록 거부를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이다.

글라스는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한 뒤 유력 시사 주간지 '더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에서 1996~1998년 기자로 근무하면서 여러 건의 특종 기사를 발굴하는 등 스타 기자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의 기사에 대해 날조 의혹이 제기됐고, 그가 쓴 41건의 기사 중 최소한 27건의 기사에서 취재원 발언, 정보 제공자 또는 사건 전체가 날조된 사실이 드러났다. 해고당한 글라스는 조지타운대 로스쿨에 입학해 2002년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변호사 등록을 거부당했다. 뉴욕주 변호사협회는 그가 과오를 뉘우치지 않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 사건은 2003년 '섀터드 글라스(shattered glass·부서진 유리)'라는 영화로 제작돼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다시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2007년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등록을 시도했다. 그의 변호인 측은 그가 1998년 이후 불법적이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협회 심사위원회는 '2대1'로 변호사 개업 허용을 건의했다. 그러나 주 대법원은 단호했다. 주 대법원은 결정문에서 "쟁점은 글라스가 법조인으로 활동하는 데 도덕적으로 적합한가 여부"라면서 "그에게 자비심을 베풀 것인지는 별개 문제"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의 잣대를 들이대 우리나라 변호사들의 자격을 심사하거나 징계를 결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티븐 글라스는 형사적으로 소추를 받은 적이 없다. 20대 시절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법조인의 길이 원천 봉쇄됐다.

대한변협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고 오히려 신망이 높은 편인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 수리를 대법관 전관예우 근절을 이유로 거부했다. 법조 문화가 맑아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법적 근거도 없이 개업 신고 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법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라는 비난 여론이 우세했다.

전관예우 근절이 그렇게 시급한 문제라면 변호사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현행 변호사 등록 심사와 징계 제도도 함께 검토해야 마땅할 것이다. 대법원은 물의를 빚거나 비리 혐의가 드러난 판사들에 대해 징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표만 받는 경우가 많아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한변협에 설치된 변호사 등록심사위원회는 위원 9명 중 8명이 법조인으로 구성돼 온정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판사 재직 시절 '가카새끼 짬뽕' 등의 표현으로 현직 대통령을 비하하고 판결 합의 내용을 공개해 말썽을 빚은 이모 전 부장판사의 등록 여부를 표결에 부쳐 '5대4'로 가까스로 등록 거부한 게 최근 몇 년간 유일한 실적이다.

판사 재직 시절 배석 여판사와 부적절한 관계로 물의를 빚은 한 변호사는 사건 수임을 위해 브로커를 고용했다가 적발되고, 의뢰인과 금전적 트러블로 징계에 회부되는 등 법조계의 지탄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변호사징계위원회가 가할 수 있는 제재는 일정 기간 변호사 영업을 중단시키는 정직(停職) 처분이 고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