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중학교 교과서 18종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집어넣은 데 이어 2015년판 외교청서(外交靑書)에 똑같은 내용을 기술했다. 이와 함께 총리 비서실 역할을 하는 내각 관방장관 직할 조직 홈페이지에 독도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로 했다. 현재 이 홈페이지에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독도·러시아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가 들어가 있다.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 중이고, 일본인 후손이 살아있는 쿠릴 열도보다 독도가 먼저 나온다.

외교청서는 9년 만에 영문판을 만들어 해외에 보급하겠다고 했다. 데이터베이스도 영문판을 만들 예정이다. 교과서를 통해 다음 세대 일본인에게, 영문판 외교청서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국제사회에 일본의 '혼네'(本音·본심)를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얘기다. 10년 이상 외무성을 담당한 일본 언론인은 "과거에는 영토건 역사건 한국의 입장을 신경쓰자는 인식이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우리 몫을 챙기자'는 입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일본의 본심은 꼭 독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7일 본지가 입수한 2015년판 외교청서에는 심상찮은 변화가 적지 않았다. 먼저 "한국과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문장이 빠졌다. 새로 들어간 내용 중 한국에 우호적이거나, 양국 관계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일본 외무성은 우선 지난해 아사히 신문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보도한 과거 기사 중 일부를 취소한 사실을 외교청서에 추가했다. 외무성은 그러나 아사히 신문이 위안부 문제를 보도한 수많은 기사 가운데 오보로 확인된 기사는 이 기사 이외에 거의 없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외무성은 또 지난해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검증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위안부들은 본인 의사에 반해 징집된 경우가 많았다"고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담화다. 아베 정부는 지난해 2월 고노 담화 검토팀을 구성했다. 이들은 "고노 담화가 (구체적인 현장 조사가 아니라) 한·일 간 외교적 조정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외무성은 또 산케이 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외교청서에 추가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거나 주변국 정상이 바뀌는 등 국제 정세에 중대하고 긴박한 영향을 미친 사건도 아닌데, 개별 언론사가 사실 확인 노력도 없이 다른 나라 정상에 대한 허위사실을 보도했다가 법정에 선 사건을 외교청서에 실은 것은 이례적이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말로는 '한국에 대해 열려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과 관계를 회복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즈미 하지메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과거에는 일본이 더 우위에 있었지만 최근 20년간 한국은 급속히 성장하고 일본은 쇠퇴했다"면서 "더 이상의 배려가 사라지게 됐다"고 했다.

진짜 문제는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안겨줄 외교적 부담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영문판을 제작한다는 점과 '가치를 공유하겠다'는 표현을 뺀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일본은 지금 우리가 아닌 미국을 향해 '한국은 중국 편이고 일본이 미국 편'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엔 한·일 관계가 나빠져도 일본 사회 안에 '한·일 관계가 중요하니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제 그런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전문가들은 안타까워했다.

☞외교청서(外交靑書)

일본 외무성이 1년간의 국제 정세 추이 및 기본 외교 원칙, 외교 활동 전망 등을 담아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로, 우리나라의 '외교백서'에 해당한다. 1957년부터 매년 발행되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올해 외교청서 전문을 영어로도 번역해 공개할 예정이다.

TV조선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