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시·군의회 의장단 절반 이상이 홍준표 경남지사의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 추진을 위한 조례 제정을 당분간 보류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이 사업은 홍 지사가 삭감되는 무상급식 예산(643억원) 전액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사업으로, 시·군의회의 조례가 제정되지 않으면 사업은 장기적으로 파행할 가능성이 있다. 경남 시·군의회 의장단은 전원 새누리당 소속이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남 시·군의회 의장단 18명 중 12명은 지난달 27일 고성군의회에서 정례회의를 갖고,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및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원석 창원시의회 의장은 본지 통화에서 “이날 회의에서 3~4명의 의장이 발언을 했는데, 모두 무상급식 삭감 예산을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에 투입하는 내용의 조례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며 “경남 시·군의회 의장 18명 중 10명 이상은 조례 제정을 당분간 보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의장의 입장과 시·군의회 전체 입장은 별개”라면서도 “상당수 시·군의회는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의 조례 제정을 일단 4월 이후로 미룰 방침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지난 3월 김해시의회는 이 사업의 추진을 위한 조례 제정을 보류한 바 있다.
이성복 거창군의회 의장은 본지에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의 취지는 옳지만, 무상급식 예산을 한꺼번에 삭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조례를 제정하지도 않았는데 현재 경남도가 지원사업 신청을 받는 것은 시·군의회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의장은 “현재 경남 시·군의회가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조례 제정 여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의견 취합이 끝날 때까지 조례 심사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은 도비 257억원과 시·군비 387억원이 들어간다. 그런데 시·군 의회가 조례를 제정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시·군비 투입에 차질이 생겨 정상적인 사업 시행이 어려워진다.
경남 시·군의회 의장단 다수가 조례 제정에 유보적 입장을 보이는 것은 교육지원 사업이 아니라 무상급식 중단 때문이다. 경남도의 무상급식 중단 결정에 대한 학부모 단체 반발 등 지역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2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무상 급식 중단에 대해 전국적으로는 ‘잘한 일’(49%)이란 응답이 ‘잘못한 일’(40%)이란 응답보다 높았다. 하지만 경남도에선 ‘잘한 일’(35%)보다 ‘잘못한 일’(49%)이란 응답이 많았다. 한 시·군의회 의장은 “교육지원 사업을 위한 조례 제정을 보류하겠다는 것은 무상급식 중단을 보류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만약 김해시에 이어 다른 경남 시·군의회가 공식적으로 조례 제정 보류 결정을 내릴 경우, 홍 지사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에선 “홍 지사가 작년 말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 방침을 밝혔을 땐 잠자코 있던 시·군의회 의장들이 지금 와서 지역 여론의 눈치를 보고 ‘뒷북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홍 지사 측은 “사업 시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남도 관계자는 “시·군의회 의장단은 기본적으로 홍 지사의 선별복지 취지에 공감하고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개정된 지방재정법이 적용돼 시·군의회의 조례가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올해는 현행법과 경남도의 보조금 지급 관련 조례에 따라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의 정상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군의회 조례 제정이 한 두달 늦어진다 해서 사업에 차질이 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홍준표발(發) 무상급식 중단 논란은 홍 지사가 작년 11월 ‘경남교육청과 일선 학교들이 무상급식 예산 지원에 따른 감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경남 예산에서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그가 지난달 9일 무상급식 중단과 해당 예산을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으로 돌리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을 더 커졌다. 야당은 “홍 지사의 대권 노림수”, “도정(道政)이 아니라 아이들 밥 그릇 뺏는 비정(非情)”이라며 공격했고, 여권 일각에서도 “홍 지사가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홍 지사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무상급식보다 교육격차 해소가 우선”이라며 ‘무상교육 중단과 서민층 교육 지원’ 결정을 밀어붙였다. 그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작년 통계청 발표를 보면 소득 상위 20%가 쓰는 교육비와 소득 하위 20%가 쓰는 교육비 격차가 8배”라며 “한국은 교육이 희망인데 이런 교육격차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했다. “당장 비판을 받더라도 옳은 길을 가는 욕 먹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달 18일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경남도청에서 이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그러나 입장차만 확인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라며 감정 섞인 말을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최근 전국 단위의 여론조사에선 홍 지사의 ‘선별 복지’ 방침에 찬성하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과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 추진은 국내엔 전례가 없는 실험”이라며 “이것의 성공 여부가 향후 그의 정치 행보는 물론 국내 복지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