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현해(53) 스님이 경기도 남양주의 수도권119특수구조대를 찾아갔다. 스님을 초청한 김성수 구조대장은 "비구니 최초로 소방방재 학도가 되셨으니 직접 견학시켜드리겠다"며 맞았다. 호기심 가득한 눈의 스님은 구조용 손도끼를 휘둘러 보고 산소마스크도 써보았다. 그는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신입생이다.

현해 스님은 한때 킥복싱 동양 챔피언이자 우리나라 1세대 스턴트우먼으로, '타이거 문'이라 불리던 여장부다. 우슈 4단, 태권도 4단, 킥복싱 5단 등 무술만 도합 27단이다. 방송과 영화계에서 제법 유명하던 그는 서른세 살이던 1995년 돌연 출가(出家)했다. "희망이 보이질 않고 삶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알고 지내던 큰스님이 권했어요." 어진 바다라는 뜻의 법명 '현해(賢海)'를 얻은 뒤 직지사에서 사미니계를 받았다. 스님은 "어머니는 9남 1녀의 막내인 내가 평범하게 살길 바랐지만 인연법에 따르다보니 이렇게 됐다"며 웃었다.

무술 도합 27단, 스턴트우먼, 출가, 경비행기 조종사로 이어지는 경력의 비구니 현해 스님이 이번엔 ‘안전 지킴이’가 되기 위해 대학 소방방재학과에 입학, 수도권119특수구조대를 찾아갔다.

평범한 여인은 아니어도 평범한 수행자로는 사는가 싶던 현해 스님은 출가 18년 만인 재작년 비구니로는 처음으로 경량항공기 조종사 자격증을 따면서 다시 눈길을 끌었다. 그는 당시 "비행기 몰고 일본·중국을 거쳐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까지 가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작년 세월호 사고 때는 팽목항으로 가 잠수사들이 작업하는 바지선에서 물건을 날라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신기한 듯 쳐다보는 주변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멀미 한 번 없이 묵묵히 일을 마치고 한 달 보름 만에 사라졌다.

그러더니 작년 9월 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에 입학했다. "잇따른 대형 재난을 보면서 '나와 내 주변 사람의 안전은 내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찰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서 불이 나면 순식간에 확산되니 안전 전문가 한 명쯤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올 들어선 학과의 안전봉사 동아리인 '안전지킴이'의 대표까지 맡았다. 스님은 회원들과 한 달에 두세 번 빈곤 지역을 찾아가 소화기와 화재 감지기를 놓아주고 안전교육도 한다.

스님은 유일한 재산인 SUV를 몰고 전국을 다니며 비행하고 봉사활동도 한다. 늘 바쁘다 보니 "본업인 수행은 제대로 하느냐"는 눈총을 받기도 한다. 그는 '걷고 서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는다'는 뜻인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을 말했다. "앉으나 서나 말하거나 움직이거나 일상의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禪)이라고 생각해요. 염불과 참선만을 수행이라 할 순 없죠." 스님은 신자들이 '달리는 법당'이라고 별명 붙여준 그의 차 안에서 여기저기 오가는 틈틈이 천수경을 외고 축원도 한다.

올해로 출가 20년인 현해 스님은 비구니 생활 첫 10년이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고교 졸업 후 상경해 홀로 자유롭게 살다가 엄격한 규율 아래 정적인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불경을 외우는 것도 힘들고 규율을 따르기도 많이 답답했어요. 진정으로 나를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하심(下心)을 갖는 데 10년 걸렸어요." 스님의 새 목표는 불교계 안에 재난 안전구호 단체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