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평양대부흥'의 발화(發火) 지점인 장대현교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빛바랜 흑백사진만 남았다. 그러나 사진만으로도 당시 이 교회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언덕 위에 높다란 천장의 기와집이다. 그런데 구조가 'ㄱ'자(字)다. 예배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ㄱ'자의 양쪽 날개에 남녀가 각각 앉도록 좌석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남녀칠세부동석 (男女七歲不同席). 양갓집 규수는 집 밖 출입도 자유롭지 않던 시절, 선교사들은 조선 사람들의 터부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남녀가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건축구조로 'ㄱ'자를 택한 것이다.

전북 김제 금산교회과 익산의 두동교회 역시 나지막한 기와집을 'ㄱ'자로 꺾어 지어 남녀의 자리를 나눴다. 'ㄱ'자 구조는 아니지만 경북 영천의 자천교회는 직사각형 예배당 가운데에 나무판자로 벽을 가로질러 남녀 좌석을 구분했다. 서울 새문안교회 역시 초기엔 휘장을 쳐서 남녀의 사이를 가른 사진이 남아 있다. 가톨릭도 마찬가지. 경남 밀양 명례성지성당 역시 나무판으로 남녀 좌석을 나눴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착화된 가톨릭과 개신교가 남녀를 좌우로 나눴다면, 유대교와 이슬람 예배 시설은 같은 공간에서 앞뒤로 남녀 좌석을 구분한다. 서울 이태원 이슬람교 중앙성원도 예배 시간에 아래층은 남성, 위층은 여성이 자리한다. 이주화 이맘(예배인도자)은 "층을 나눌 수 없이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남성이 앞줄, 여성이 뒷줄에 자리 잡는다"고 했다.

서울 용산 주한미군 영내의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약간 부채꼴로 퍼진 공간으로 그냥 탁 트여 있었다. 인터뷰하던 랍비는 예배 절차를 안내하면서 "남성은 앞줄, 여성은 뒷줄에 앉는다"고 했다. 왜 하필 '남자 앞줄, 여자 뒷줄'일까? 이런 의문에 대해 랍비는 명쾌(?)하게 답했다. "남자들은 자기들 앞에 여자들이 있으면 '딴생각'(?)이 많이 생기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