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세탁기 분쟁'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3월 31일 "갈등과 분쟁을 대화로 해결하기로 했다"며 합의해 반 년간 이어진 '감정싸움'을 끝냈다. 관련 업계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양측의 화해 결정을 존중해 법적 다툼도 빨리 매듭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이 통상적인 형사재판 절차와 관행을 내세워 곧바로 재판을 끝낼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삼성과 LG의 세탁기 분쟁은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촉발됐다. 조성진(59) LG전자 사장이 매장에 전시돼 있던 삼성전자 세탁기를 힘주어 누른 장면이 매장 CCTV에 찍힌 것이다. 삼성이 업무방해·재물손괴·명예훼손 등 혐의로 조 사장 등을 고소하고 검찰이 관련자들을 기소해 지난달 13일에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공판준비기일까지 열렸다. 그 사이 "국제 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할 두 글로벌 기업이 국내에서 소모적인 싸움만 한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고, 삼성과 LG는 "진행 중인 모든 법적 공방을 끝내겠다"며 극적으로 화해했다.

그러나 검찰은 재판을 곧바로 끝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 사장의 혐의 중 하나인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히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다. 삼성이 탄원서나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면 재판부는 명예훼손 부분은 '공소기각' 판결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검찰은 "업무방해와 재물손괴 등 나머지 혐의는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단 공소가 제기되면 재판을 통해 결론을 내야 하는 혐의"라며 즉각적인 공소 취소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양측이 합의했다는 점을 법정에서 구형(求刑) 때 참작할 수는 있어도 합의를 근거로 곧바로 업무방해와 재물손괴까지 공소를 취소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쟁점도 있다. 조 사장은 "사건 발생지는 독일, 주소지는 경남 창원이기 때문에 재판 관할권이 창원지법에 있다"며 관할권 변경 신청을 낸 상태다. 그래서 오는 17일로 예정된 2차 공판준비기일에선 관할권 관련 내용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법원 관계자는 "조 사장 측이 2차 기일에서 관할권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재판 기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양사가 전격 합의했는데도 재판이 곧바로 끝나지 않는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자 두 회사와 업계는 당황하고 있다. 특히 업계는 두 회사의 합의 정신을 존중해 재판도 조기에 종결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두 회사의 이미지와 국제신용도 등을 고려해서라도 검찰이 대승적 차원에서 재판의 조기 종결을 법원에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업계의 한 간부는 "업무방해 등 혐의에 대해 재판이 계속되면 재판의 속성상 서로 상대방의 불리한 점을 부각시키게 된다"며 "법정에서 계속 서로를 공격하고 그 내용이 외국에 알려지면 삼성과 LG의 외국 경쟁사들만 돕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제3의 피해자가 없다는 점을 법원이 감안해 빨리 종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이번 사건만큼은 통상적인 형사재판 절차에 따르되 양사의 합의 정신을 존중해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양측 변호인들이 관할권과 증거 조사 등에 대해 실무적인 협의를 신속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