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기술을 믿었었다. 편리함과 더불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줄 것으로. 그러나 원전, 선박, 그리고 항공기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사회 전반에 불안이 황사처럼 뿌옇게 퍼져버렸다.
주부 A가 외래 약속 시간이 30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다. 아니 오지 못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만 타면 불안이 몰려오다 보니 1층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대표 B는 노력 끝에 일본 수출이 확정 단계다. 이제 일본으로 날아가 그쪽 사장과 악수하고 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된다. 그런데 최근 비행기 공포가 생겨서 가질 못하고 있다. 일본 회사에 서울로 와줄 수 있느냐고 하니 황당하단 반응이다.
불안한 마음엔 행복이 깃들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일상에 여러 형태로 불편을 가져온다. 기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공백에 불안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성가시게 만드는 불안이지만 사실은 생존에 가장 중요한 시그널이다. 불안이 신호를 넣으면 우리 뇌 안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작동해 생존을 보존해 준다. 더 나아가 불안은 성취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아야 뇌가 효율을 올린다는 '적정 스트레스 이론'은 이미 조직 인사 시스템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러나 과도한 불안은 뇌의 효율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공부를 평소 잘하는데 시험만 보면 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는 과도한 시험 불안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시험 불안이 심하면 그 불안을 처리하는 데 뇌의 자원이 50% 이상 동원되니 시험을 나머지 뇌 반쪽으로 치르는 셈이 된다.
과도한 불안 신호가 생길 때 현대인이 주로 쓰는 마음 관리법이 '조정(control)'이란 심리 전략이다. 뇌의 에너지를 태워 불안을 찍어누르고 긍정적인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힘이 충분하다면 상당히 효율적이지만 반복적으로 사용해서 뇌가 지치게 되면 잘 먹히지가 않는다. 그리고 불안이란 녀석은 힘으로 찍어누를수록 블랙홀처럼 에너지를 빨아들여 더 용수철처럼 튕겨 나오는 경향이 있다. 힘으로만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불안 관리에 조정을 주로 쓰게 된 것은 기술 문명의 발달로 사회 위험을 통제하는 인류의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마을 사람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시기엔 조정만으로 불안을 극복하기엔 인간의 힘이 너무 약했다. 그러다 보니 '수용(acceptance)'이란 심리 전략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다.
현대인들은 조정에 익숙하다 보니 수용이란 단어도 억지로 상황을 이해하려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수용은 그냥 내 상황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을 이야기한다. '내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에서 잠시 물러나 관객 입장에서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신기하게도 한 발짝 물러나 내 삶을 바라보면 그렇게 힘들고 불안했던 현실이 조금은 살 만한 것으로 여겨지며 긍정 에너지가 차오른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것이 다 이런 거구나' 하는 심리적 성숙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힘들 때 먼 산을 바라보면 그래도 살아봐야지 하는 긍정의 힘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다. 내가 산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자연에 몰입하다 보면 산이 내 인생을 바라봐주는 듯한 수용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를 읽을 때나 미술 작품을 볼 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봄날이 화창하다. 봄은 위험 사회에서 불안을 억누르다 지친 뇌를 재충전하기에 최고의 계절이다. 봄을 느끼지 못한다면 뇌의 발전소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봄의 상징인 벚꽃의 꽃말은 '절세미인'이다. 그러나 그 느낌은 서글프다. 벚꽃이 만개(滿開)하고 지는 과정이 우리 인생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의 한계를 따뜻하게 수용할 때 역설적으로 오늘을 열심히 살자는 에너지가 우리 뇌에 차오른다. 불안 신호도 줄어들면서 말이다. 눈물 나도록 파란 봄 하늘을 보며 수용을 연습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