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9일 오후 싱가포르 국립대학 문화센터에서 진행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 국장(國葬)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의 해외 조문은 2000년 6월 8일 김대중 대통령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 총리 장례식에 참석한 이후 15년 만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싱가포르에 집결한 세계 각국의 정상급 지도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조문 외교'를 펼쳤다.

이날 박 대통령의 좌석은 문화센터 2층 상단에 마련됐다. 박 대통령의 좌우에는 이스라엘 리블린 대통령과 미얀마의 테인 세인 대통령이 앉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좌석은 박 대통령보다 한 단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대통령이 총리보다 의전 서열이 높은 데 따른 자리 배치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장례식장에 입장해 조문록 서명을 하기 앞서 훈센 캄보디아 총리,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 등과 잠시 인사를 나눴다. 2층 좌석으로 이동해서는 데이비드 존스턴 캐나다 총독, 메이트파레 뉴질랜드 총독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리콴유 전 총리 장례식장에서 레우벤 리블린(오른쪽) 이스라엘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함께 장례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조문 외교를 펼쳤다.
29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장례식장에 아베 신조(오른쪽에서 둘째) 일본 총리가 입장하자 미국 조문단 대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 왼쪽은 토니 애벗 호주 총리.

관심을 모았던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만남은 장례식이 끝난 뒤 열린 리셉션장에서 이뤄졌다. 아베 총리가 먼저 박 대통령에게 다가와 "최근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에 감사드리며,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역할을 해준 것을 평가한다"고 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3국 외교장관 회의에서 합의한 대로 앞으로 필요한 조치를 잘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 성과를 그대로 이어나가자는 취지였다. 정부 소식통은 "박 대통령이 말한 '3국 외교장관에서 합의한 것'은 3국 정상회담을 의미한다"며 "한·일 관계와는 별도로 3국 정상회담과 협력은 적극 추진하자는 뜻"이라고 했다.

아베 총리가 내달 방미 과정에서 예정된 미국 의회 연설에서 과거사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발언을 해 줄 것을 간접적으로 요청하는 의미도 없지 않았다. 이날 만남은 작년 11월 베이징과 호주 브리즈번에서 잇따라 열린 APEC 회담 및 G20 정상회담 만찬 이후 4개월여 만이다. 당시 두 사람은 위안부 문제와 한·중·일 정상회담에 대해 짧게 얘기를 나눴었다.

박 대통령은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부주석과도 짧게 환담했다. 리 부주석은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가서명을 축하하며 앞으로 AII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와 관련해 긴밀한 협력을 해나가자"고 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AIIB 참여 배경을 설명한 뒤 "앞으로 AIIB의 성공을 위해 잘 협의해 나가자"고 말했다. 한국이 AIIB의 창립 회원국이자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 만큼 AIIB 운영에서 양국 간 협력의 틀을 잘 갖춰나가자는 뜻으로 해석됐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토머스 도닐론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미국 대표단은 박 대통령에게 "한·미 동맹의 강화를 위해 지혜와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미·중·일 정상급 인사들이 모두 한국과 협력관계 강화를 바란다는 뜻을 전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6시 30분 싱가포르를 떠나 귀국하기 전까지 총 17시간을 싱가포르에 머물며 싱가포르 주요 인사 및 18개국 정상급 인사들과 잇따라 만났다.

TV조선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