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유학(乳學)의 나라.'

출판가에서 이른바 '라이트노벨(light novel·가벼운 소설)' 장르로 분류되는 한 책에서 조선을 설명한 대목이다. 이 책은 조선의 국학이었던 '유학(儒學)'의 발음을 차용해 조선을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나라라 바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도 갓 영의정에 오른 서인의 총수 '송시연'으로, 여성의 풍만한 가슴을 의미하는 '거유(巨乳)'로 표현했다. 조선 후기 노론의 영수이자 '거유(巨儒·이름난 유학자)'로 꼽혔던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모델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역사의 실존 인물과 사실(史實)을 성적(性的)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데 활용하거나 왜곡한 만화투의 소설과 웹툰(인터넷 만화)이 유행하고 있다. 특히 만화 느낌의 삽화가 중간 중간 삽입된 이런 유의 출판물과 웹툰이 중고교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 한때 네티즌 사이에서 이 책에 나오는 '조선은 유학(乳學)과 거유(巨乳)의 나라'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동의보감’ 저자 허준을 생체 실험을 일삼는 여성으로 묘사한 모바일 게임(왼쪽)과, 조선 유학자 송시열과 송준길을 모델로 한 여성 주인공을 성적으로 희화화한 ‘모애모애 조선유학’이라는 책(오른쪽).

라이트노벨계에서 꽤 인기를 끌었던 다른 책을 놓고는 단군신화를 왜곡했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010년 12월 출간 당시 온라인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순위 1위를 하고 현재 16권까지 출간된 이 책은 이른바 '단군신화 러브 코미디'를 표방하며 환웅·웅녀와 호랑이를 주요 등장인물로 내세웠다. 이 책에서 웅녀는 인간의 모습을 한 환웅의 부인이지만 요괴다. 또 웅녀의 후손인 '곰의 일족'은 웅녀의 말에 복종하는 인형이다. 자손 대대로 가슴이 크다는 설정도 있다.

조선 시대 '이괄의 난'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포털사이트 웹툰은 이괄을 '카리스마형 리더'의 전형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이괄이 난을 일으키기 전 '항왜'(降倭·임진왜란 때 조선에 항복한 일본군) 마을에 단신으로 들어가 이들을 자신의 사병(私兵)으로 포섭했다는 웹툰 줄거리에 네티즌들은 '이괄은 진짜 사내'라거나 '조선 최고의 쿠데타'라는 댓글들을 달았다. 하지만 이괄이 웹툰에 묘사된 것처럼 항왜들을 설득하는 장면은 정사(正史)는 물론 야사(野史)에서도 근거를 찾기 어렵다.

또 일본의 한 게임사가 지난해 1월부터 한국에서 서비스한 모 스마트폰 카드게임은 주요 캐릭터에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 또 이 캐릭터가 사용하는 무기를 독(毒)을 연상시키는 '독의보감'이라 불렀다. 게임에서 조선의 명의 '이제마'의 이름을 그대로 딴 캐릭터는 '허준'과 함께 생체실험을 하고, 이들이 생체실험으로 만든 캐릭터는 '파독(派獨) 간호부장'이었다. 결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일본이 한국 역사를 왜곡·폄하했다는 반발에 부딪혔고 게임회사 측은 캐릭터를 다른 것으로 바꿨다.

아무리 소설이나 만화라 해도 역사를 비하·왜곡하거나 사료적 근거를 찾기 어려운 내용을 스토리로 쓰면서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상력으로 창조된 역사적 인물의 이미지를 수많은 청소년이 여과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포털사이트 한 곳의 웹툰 서비스 방문자가 한 달에 460만명에 달하고 이 중 70% 정도가 10~20대 젊은 층이란 조사도 있다. '허준'이란 캐릭터가 등장한 게임도 출시 당시 100만명이 내려받았다.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사 황모(51)씨는 "지난해 수업 중 아이들이 허준이 쓴 책이 독의보감이라 하기에 지적했더니 오히려 게임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이 틀렸다'고 하더라"고 했다.

☞라이트노벨

현실적 개연성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가벼운 소설을 말한다. ‘가벼운(light)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소설(novel)’이라는 뜻의 조어로 만화 등이 삽입돼 10·20대가 주된 독자층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