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에 공통된 가장 심각한 보건 문제는 결핵입니다. 통일을 위해 최우선으로 풀어야 할 과제죠."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은 지난 20일 진료실에서 본지와 만나 "통일될 때까지 결핵을 이대로 두면 사회·경제적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 결핵의 날'인 24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등 민·관 10여개 단체가 출범시킨 '코리아 결핵퇴치 연맹'의 공동 대표에 선임된 인 소장은 "그동안 민간 단체가 산발적으로 해 온 북한 결핵 관리 지원 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연맹을 출범시키게 됐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지금까지 34개 회원국 가운데 결핵 발생률·사망률·다제내성 결핵 환자 수가 전부 1위다. 인구 10만명당 결핵 환자 수는 한국이 143명으로, 2위 포르투갈(30명)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다. 전 세계 결핵 환자의 95%가 개도국에 산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핵에 관한 한 한국은 개도국 수준을 못 벗어난 셈이다. 북한은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현재 한국보다 2배 많은 약 14만명이 결핵을 앓고 있으며, 해마다 11만명에 이르는 환자가 새로 생긴다고 WHO는 보고 있다. 북한의 결핵 환자 발생률은 한국의 4.4배이고, 사망률은 5배나 높다.
인 소장은 "특히 심각한 것은 북한에 다제내성 결핵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제내성(多劑耐性) 결핵이란 가장 효과적인 두 가지 결핵약이 모두 듣지 않는 결핵이다. 그는 "일반 결핵은 약값 3만∼4만원으로 6개월 치료하면 낫지만, 다제내성일 경우 약값은 최소 100배 이상 들고, 치료 기간도 2년 걸린다"고 말했다.
"북한이 만약 인도와 비슷한 비율이라면 다제내성 결핵 환자는 한 해 3500명 정도 생기겠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수준이라면 8000∼2만3000명까지 봐야 할 겁니다."
그는 "소련 체제 붕괴 이후, 러시아·우즈베키스탄 등에선 보건 체계가 무너지면서 다제내성 결핵 환자가 전체 결핵 환자의 20%를 넘을 정도로 급증했다"면서 "북한이 러시아의 전철을 밟게 내버려 둬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WHO는 현 북한 체제에서 5년간 결핵을 치료하는 비용으로 약 500억원을 잡았는데, 통일 이후 그 비용은 10배로 늘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금도 한국 인구의 30%가 결핵균을 갖고 있어요. 6·25 이후 한동안 창궐했던 결핵균이 살아남은 탓이죠. 이 균은 지독합니다. 지방층이 두꺼운 세포벽을 갖고 있어서 말라 붙은 가래 속에서도 1년 이상 생존할 수 있어요. 남북 교류건, 통일이건 서로 결핵 옮기면서 할 순 없잖아요?"
4대째 한국에서 선교와 의료·교육 봉사를 하고 있는 린튼 집안 출신인 인 소장은 "한반도 결핵 퇴치는 내겐 운명적 과제"라고 말했다. 어릴 적 그의 형 셋이 모두 결핵을 앓았고, 그 때문에 어머니 인애자(로이스 린튼)씨는 '순천결핵재활원'을 세워 평생 결핵 환자를 돌봤다. 그의 형 인세반(스티븐 린튼)씨는 지난 1995년부터 북한 결핵 환자를 돕고 있는 유진벨재단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인 소장은 "국내외 전문가, 관련 단체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면서 최선의 결핵 퇴치 방안을 찾겠다"면서 "우선 오는 5월 19·20일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세계 최고 결핵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제6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는 '한반도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힘'을 주제로 통일 관련 실천적 이슈들이 심층 논의된다.
☞결핵(結核)
결핵균은 석기시대 화석이나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래됐으며, 아직도 세계적으로 매년 약 200만명이 결핵으로 사망한다. 대부분 폐결핵인데, 주로 환자가 기침할 때 튀는 침방울에 섞여 나온 균이 공기를 타고 주변 사람의 폐에 들어가 전염시킨다. 균에 노출되더라도 35% 정도만 감염되며, 감염자 중 약 10%가 결핵 환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