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1년의 세계여행을 감행한 채승우 전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가 최근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40후반에 접어든 주제에 무모한 일을 벌였다"면서도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는 점을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간 주말매거진에 실린 사진으로 간간이 근황을 알린 그가 사보에 세계 여행 후기를 전해 왔다.
2013년 12월3일 한국을 떠나 1년간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중미 멕시코에서 출발해서 남미대륙을 한 바퀴 돌고 미국으로 갔다가 아이슬란드를 거쳐 유럽으로 넘어갔습니다. 북유럽 동유럽과 남부 일부 국가를 방문한 후, 터키와 이란에 조금 오래 있었습니다. 그 후 동남아와 일본을 거쳐 돌아왔지요. 빼 먹은 대륙과 나라가 많으니 세계일주라고 부르기는 뭐합니다만, 그럭저럭 지구 한 바퀴이긴 합니다.
긴 여행과 세계일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인 듯합니다. 또 세계일주와 '아내와 함께하는' 세계일주는 전혀 다른 경험이지요. 저는 무려 아내와 함께 세계를 돌았습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친구들이 진심으로 우리를 말리더군요.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오면 다행이고, 아예 중간에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다는 이유였지요. 우리는 함께 돌아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장모님께서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아내는 여행 3분의1쯤 이후부터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세상구경은 좋은데, 떠도는 게 힘들다면서요. 여행의 마지막에는 저도 꽤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시간이 지나고 나니, 힘들었던 기억은 잊어버리고 좋았던 생각만 나네요. 이때쯤이 감상문을 쓰기 제일 좋은 때인 듯합니다.
아내와의 여행에 성공하는 비결은 가끔 따로 다니는 것입니다. 다툼이 생기거나 갈등이 커질듯하면 따로 다니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거죠. 우리 부부는 가끔, 아니 종종 따로 다녔는데요. 그중 두 번은 규모가 컸습니다. 한 번은 아내 혼자 비행기표를 끊어서 이스터섬으로 가버렸고, 또 한 번은 동유럽에서 호스텔 체크아웃을 하고 사라지더니 스페인에 가 있더군요. 예정에 없던 그 비행기 값은 여행 비용을 크게 증가시켰습니다.
전세금 빼서 은행에 넣어놓고 월이자 받으면서 떠난 우리 여행의 예산은 6000만원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썼을 생활비 집세와 비교해보면 그리 무리한 예산은 아닙니다. 하루에 둘이서 10만원을 쓴다는 계획이었는데, 많은 부분에서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특히 아내가 혼자서 비행기 타고 가버릴 거라는 예상은 못했지요. 결과는 엄청난 예산 초과였습니다. 서울 돌아와서 홍대 근처에 전셋집을 얻었는데, 집이 작아졌습니다.
여행기간 숙소로는 주로 호스텔의 도미토리방을 사용했고, 하루에 한 끼는 호스텔 부엌에서 만들어 먹었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이 그곳의 문화를 접하는 일이라 즐거웠다고 말합니다. 비록 제일 많이 먹은 것은 스파게티였는데도 말이지요.
엉터리 숙소 때문에 애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깨끗한 방에 단단한 침대와 햇빛이 잘 드는 창문 하나 있는 방을 만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더군요. 거기에 빨래 널 공간과 작은 책상까지 있으면 말 그대로 행복해하면서 며칠을 살았습니다.
저희는 바퀴 달린 큰 가방을 하나씩 끌고 다녔습니다. 아내의 가방에 든 4개월 치의 샴푸 때문에 다투기도 했지만(아내는 남미에 샴푸가 없을지도 모른다며 4개월 치의 샴푸와 로션을 싸가지고 갔습니다.) 가방 두 개만큼의 짐만으로 일 년을 살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창고에 쌓아놓은 살림살이들이 다 뭔가 싶더군요. 이번에 이사할 때 짐을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31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한 곳을 꼽으라면 브라질입니다. 버스 운전사, 가게 주인, 식당 옆자리 손님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따봉’이라고 말하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모두들 행복해 보였습니다. 우리 모습은 어떤가 하고 비교해보게 되더군요. 세계 평균이라는 것을 계산해볼 수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평균에 비해 너무 깨끗하고 너무 편리하고 너무 빠르게 사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여행 중에 아내는 많은 나라가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멋있어 보였나 봅니다. 서울에 돌아와 새집을 꾸미면서 제 어머니가 물려주신 자개장롱을 안방에 놓겠다고 하더군요. 팔리지도 않아서 장모님댁 작은방에 쌓아놓았던 문갑과 경대도 다시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그것들을 안방에 늘어놓고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장롱이 하나 생긴 셈이니, 여행에서 얻은 수확입니다.
서울 돌아와서 만난 옛 동료들은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궁금해 하십니다. 어찌 된 것이, 여행을 하고 와서 우리 부부는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이 생겼습니다. 아내는 재봉틀을 사고 바이올린을 얻어왔습니다. 저는 동네 평생교육관에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브라질 북 모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두 번째 스테이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 듯합니다. 동료들 궁금증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첫 번째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대답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