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질 위에 감정을 입혔다. 일필휘지(一筆揮之)한 붓끝에서 마주보는 두 사람의 형상이 드러난다. 먹의 농담(濃淡)과 획의 삐침에서 움직임이 느껴진다. 작가 허회태(58)는 이를 '이모그래피'라고 했다. 이모션(감정)과 캘리그래피(글씨)의 합성어. 글씨에도 감정이 있다는 뜻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허회태 개인전에 서예, 회화, 조각 등 101점이 나왔다. 서예에서 회화로, 다시 입체로 넓어지는 작품 세계를 둘러볼 수 있다. 다섯 살 때부터 전남 순천의 서예가였던 큰아버지(강헌 허영재)로부터 붓글씨를 배웠다는 그는 중학생 때 성균관대 주최 휘호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199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 부문 대상을 받았다. 허씨는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베를린 주독 한국문화원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전통 서예만으로는 외국인의 마음을 얻기 어려웠다. 서예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그림으로 표현한 '이모그래피' 장르를 그래서 창안했다"고 했다.
전시장의 절반은 입체 작품으로 채웠다. '이모그래피'에서 더 나아간 '이모스컬프처'라고 했다. 이모션(감정)과 스컬프처(조각)가 결합된 '서예 조각'이다. 화선지에 깨알같이 글씨를 쓴 뒤 이를 4등분한 공 모양 스티로폼 조각 위에 감싼 후 캔버스에 붙이거나 설치물을 만들었다. 반으로 쪼개진 구(球) 사이에서 용암이 분출하거나 에너지가 팽창하는 이미지를 표현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 그는 "서예를 3차원 예술로 만들어 무한공간의 우주로 생명이 확산되는 기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허씨는 지난해 10월 스웨덴 국립박물관 초대로 '허회태 이모그래피' 특별전을 열었다. 당시 스웨덴 국립박물관장은 "서예를 기반으로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역동적인 한국 문화를 보여줬다. 서로 다른 나라와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라고 평했다. 27일까지. (02)588-3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