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상(宋仁相·101·사진)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이 22일 오후 2시 5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1960~1970년대 한국 경제 근대화 및 성장의 주역이었던 송 명예회장은 경제 관료와 민간 기업을 두루 거친 한국 재계의 대표적 원로로서 한국 경제계의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풍부한 식견과 탁월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경제 외교를 주도했으며 '재계의 신사(紳士)'로 불렸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2012년 송 명예회장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한 평전 '어둠 속에서도 한 걸음을'에서 그를 "이 나라 근대사 최후의 증인"이라고 했다. 이 평전에서 송 명예회장은 자신의 삶을 '가난한 조국에 다 바치고 싶었다'는 말로 요약했다.
1914년 강원도 회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상과대학의 전신인 경성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으며 1949년 재무부 이재국장으로 신생 정부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부 시절 한국은행 부총재를 거쳐 부흥부 장관을 맡아 '농업이 아닌 공업에 투자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다. 재무부 장관 시절에는 한국 최초의 장기 경제개발 계획인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추진해 후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기틀도 마련했다.
그는 1960년 4·19혁명 후 다른 관료들과 함께 3년간 감옥에 갇혔다가 3공화국 때 다시 중용됐다.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임명으로 1974~1976년 EC(유럽공동체) 대사로 재직하던 동안 한국의 대(對)유럽 수출은 3억달러에서 10억달러로 늘었다. 1976년 초대 수출입은행장을 맡았다.
1980년 동양나이론 회장 취임을 계기로 기업계에 몸담았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한국능률협회 회장, 한미(韓美)협회 회장, 국제로타리 이사 등을 거쳐 효성그룹 고문과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을 맡았다. 2007년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고 같은 해 국제로타리 영예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송동진(사업)씨 등 1남 4녀가 있다.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전 상공부 장관), 고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주관엽(사업)씨가 사위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25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대전 현충원. (02)2227-7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