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54년 전 있었던 제2대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사진〉의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를 재조사하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7일 보도했다. 사망 당시 56세였던 스웨덴 외무장관 출신의 함마르셸드는 1953년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해 국제 분쟁과 제3세계 갈등 해결에 적극 뛰어들었다. 1955년엔 비(非)회원국이던 중국을 개인 자격으로 찾아, 그곳에 억류된 6·25전쟁 참전 미군 11명을 구해내기도 했다. 초기 유엔의 지위를 격상시켜 역대 8명의 유엔 사무총장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1961년 9월 함마르셸드 사무총장을 태운 비행기는 아프리카 잠비아 북부 상공을 날고 있었다. 그는 DR 콩고 내전 해결을 위해 무장단체 지도부와 만날 예정이었다. 착륙을 위해 '하강 신호'를 보낸 직후 비행기는 잠비아 느돌라 공항 인근에 추락, 16명의 탑승객이 모두 사망했다. 유엔은 당시 세 차례에 걸쳐 조사를 벌였지만, 끝내 추락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노벨위원회는 생존자에게만 시상한다는 관례를 깨고, 그해 함마르셸드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 그의 죽음이 단순한 비행기 추락사가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 증폭됐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은 "그들이 함마르셸드를 죽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함마르셸드의 죽음에 배후가 있다는 걸 암시한 것이다. 구체적 증언도 나왔다.

당시 지중해 키프로스의 미 공군 신호 정보 기지국에서 근무했던 찰스 사우설(80)씨는 "어떤 비행기 조종사가 함마르셸드의 비행기를 목격하고 격추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미 공군이었던 폴 헨리 애브럼도 "미국인이 유엔 비행기를 격추했다는 무전을 들었다"고 말했다.

함마르셸드 살해 음모론은 DR 콩고의 자원 문제와 관련이 깊다. 당시 미국과 벨기에는 콩고의 막대한 자원 개발 사업권을 갖고 있었는데, 함마르셸드가 DR 콩고의 내전을 해결하면 이 사업권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컸다. 또 텔레그래프는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함마르셸드를 소련의 동맹자로 의심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잠비아 등 국제사회에서 함마르셸드 의문사 재조사에 대한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유엔은 이번에 이를 수용해 재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꾸려 지금까지 나온 증거와 증언의 신빙성을 검토해 오는 6월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는 "유엔이 미국과 프랑스, 영국, 벨기에 등 회원국에 미공개 자료 제출을 명령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