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탈북 청소년 대안 학교인 겨레얼학교에는 '팅부둥'(聽不憧·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의 중국어)이라고 불리는 청소년들이 있다. 이들은 탈북 여성들이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현지인과 결혼해 낳은 아이들로 한국어를 거의 못한다. 사람들의 질문에 '팅부둥'이라는 대답만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겨레얼학교에는 한국말을 잘 못하는 제3국 출생 탈북자 자녀들이 전체 60여명 가운데 80%를 차지한다.
이들은 국내에 입국하면 탈북자가 아닌 다문화 가정 출신 한국인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탈북자 정착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보호를 받지 못한다. 북한에서 태어난 탈북 청소년들이 국내 대학 특례입학과 병역 면제, 생계비·주거비 등 정착 지원을 받는 것과 대비된다. 이른바 '비보호 탈북 학생'으로 불리는 이들은 '다문화가족지원법'이나 '한부모가족지원법'의 적용을 받는다. 정부는 이들에게 방과 후 프로그램이나 다문화 가족 자녀에 대한 어린이집 보육비 지원 등을 해주는 데 그치고 있다.
이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도 심각하다. 이들의 어머니는 대부분 중국 등지를 떠돌던 탈북자이고, 아버지는 중국·러시아 현지인인 경우가 많다. 중국·러시아 정부는 이들이 불법 입국자의 자녀라는 이유로 출생 신고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입국 전엔 무국적자로 떠돌았다. 이들은 외국인도 아니고 탈북자로 인정도 못 받으면서 우리 사회의 주변인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제3국에서 출생한 '비보호 탈북 학생'은 2011년 608명에서 2012년 708명, 2013년 840명, 작년엔 979명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은 "탈북 여성이 북한에서 낳은 애와 중국에 팔려가서 낳은 애를 함께 한국에 데려왔는데 북한에서 낳은 애는 탈북자이고 중국에서 낳은 애는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 취급됐다"며 "한 집안에서도 이렇게 차별을 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들은 중국·러시아 등에서 부모가 헤어지거나 무국적자로 단속되는 등 아픔을 당한 경우가 많다. 한국에 들어와서도 열악한 생활환경과 사회적 편견과 차별, 언어적 한계 때문에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벌목공 출신의 탈북자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강안드레이(14)는 강원도 홍천의 한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언어·외모 때문에 친구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아버지 강모씨는 "퇴근해서 자는 아들의 이불을 들춰보니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며 "결국 아들을 서울 구로구의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삼정학교에 보냈다"고 했다. 채경희 삼정학교 교장은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분노의 시선으로 주변을 경계하면서 주먹을 꼭 쥐고 있다"며 "이 주먹을 펴는 데만 두 달이 걸린다"고 했다.
비보호 탈북 학생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겨우 마친 뒤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순영옥 겨레얼학교 교장은 "비보호 탈북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차별 없이 살아가려면 정부가 이들을 탈북자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