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트랜스포머 시리즈, 타이타닉, 겨울왕국

B: 반지의 제왕 시리즈, 아바타, 토이 스토리

세계적인 흥행 영화도 이렇게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그룹A는 영화 안에서의 성평등을 가늠하는 '벡델테스트'를 통과했고, 그룹B는 그러지 못했다. 이 테스트를 영화에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는 스웨덴. 스웨덴의 영화관 네 곳과 한 케이블 영화채널에 2013년부터 이 벡델테스트를 상영에 도입했다. 테스트에 통과한 영화에는 'A'라는 인증마크를 붙여준다. 상영 직전에도 이 마크가 나온다. 스웨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이를 지원해준다.

◇벡델이 쉽다고? 반밖에 통과 못해

스톡홀름의 '바이오리오'는 벡델테스트를 도입한 극장 중 하나다.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엘렌 테일레는 "최근에는 A마크에 대한 입소문이 퍼져서 '어떻게 하면 벡델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겠느냐'면서 시나리오를 보내오는 감독들이 있다"고 했다.

여성 우주비행사가 주인공인 '그래비티'는 A마크를 못 받았다. 러닝타임 내내 홀로 우주에서 표류하느라 다른 여성과 대화할 기회가 없어서다. 그래서 이 테스트의 기준이 너무 단순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벡델테스트 사이트(http:// bechdeltest.com)에서 분석한 5804편의 영화 중 테스트에 통과한 영화는 57%. 43% 영화가 이렇게 단순한 테스트도 통과를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 벡델테스트의 목적이다.

◇한국 영화는?

한국 역대 흥행영화 10위에 오른 작품들을 벡델테스트에 대입해보니 통과한 작품은 절반도 안됐다. '명량' '국제시장' '7번방의 선물' '변호인''왕의 남자' '설국열차' 등 여섯 편은 벡델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통과한 작품은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해운대' '괴물' 등 네 편이다. '해운대'의 경우 쓰나미 때문에 위험에 처한 유진(엄정화)과 지민(김유정)이 전화 통화를 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 덕분에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었다. 불합격한 영화에도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 나오지만 이들 중 대부분이 '덕수 어머니'나 '유치원 선생님'처럼 이름이 없었다.

테일레는 "벡델테스트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해서 흥행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했다. 2013년 할리우드 영화 흥행 상위 50위 중 벡델테스트를 통과한 영화(24편)의 총 매출은 42억2000만달러(약 4조7635억원), 통과하지 못한 영화(26편)의 총 매출은 26억6000만달러다. 여자주인공 두 명을 내세운 '겨울왕국'은 역대 애니메이션 중 최고 흥행을 했고, 단독 여주인공을 내세운 액션·판타지 영화 '헝거게임:캐칭파이어'는 2013년 북미 전체 흥행 2위에 올랐다. 두 작품 모두 영화 시작 10분 안에 벡델테스트를 통과한다.

☞벡델테스트(Bechdel Test)

1985년 엘리슨 벡델의 만화 '다익스 투 워치 아웃 포(Dykes to watch out for)'에서 비롯된 영화 성평등 테스트. 아래 세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해야 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 ①이름을 가진 두 여자가 나온다. ②이 둘이서 대화를 한다. ③대화의 소재나 주제는 남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