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는“내 목소리가 큰 줄 알았는데 연극에선‘성량이 왜 그것밖에 안 되느냐’는 말을 듣는다”며 웃었다.

"뭐야? 난 그럴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는데!" 지난달 '신문 종합면에 났다더라'는 말을 들은 배우 박정수(62)는 깜짝 놀랐다. 얼른 펼쳐 보니, 60~75세의 '신(新)중년' 남성이 '데이트하고 싶은 여성 연예인'으로 김혜수·김희애를 제치고 그가 1위에 올랐다는 뉴스였다〈조선일보 2월 6일자 A6면〉. 10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지적(知的)이면서도 친근한 이미지'를 쌓아 온 결과다.

그가 데뷔 43년 만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서서 관객들과 직접 대면한다. 극단 실험극장(대표 이한승)이 26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 올리는 '다우트'(존 패트릭 섄리 작, 최용훈 연출)에서 주연인 엘로이셔스 원장수녀 역으로 나온다. 1964년 미국 가톨릭 학교의 완고한 교육자로, 그와 대척점에 선 플린 신부(서태화)와 줄곧 충돌하는 인물이다. 차유경과 더블 캐스트다.

'왜 이제야 연극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리 교회 다니라고 전도해도 들은 체 안 하다가 갑자기 귀에 쏙 들어오는 때가 있지 않으냐"고 했다. 출연 제의는 많았지만 그때마다 여건이 맞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거절하면 다신 안 불러 줄 거야'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연습을 시작하자 "아이고, 이걸 내가 왜…"라는 후회가 들었다고 했다. "대사 연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위치나 동선이 TV하곤 전혀 다르더라고요." TV 드라마에선 앉을 때 앉고 움직일 때 움직이면 카메라가 따라올 때가 많지만, 연극에선 그 움직임까지 하나하나 다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보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관객을 보고 말하는 것도 영 어색하더라고요."

연기하는 걸 빤히 바라보는 연출가와 눈이 마주치곤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극장에선 그 자리에 관객 여러 명이 눈을 반짝이며 앉아 있을 걸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아요." 지난주엔 혼자 계속 틀리다가 "이거 딴 사람이 하면 안 돼요?"라고 소리지르며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갑자기 킥킥 웃음이 나왔다. '환갑 넘어서 이게 무슨 짓이람'이란 생각에서였다. "지금은 박정자 언니, 손숙 언니가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어요. 진작 연극을 했어야 하는 건데."

1972년 대학 2학년 때 얼떨결에 본 MBC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한 그는 3년 만에 결혼과 함께 연기 생활을 그만뒀다. 1989년에 14년 공백을 건너뛰어 다시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1991년 '사랑이 뭐길래'에서 실제보다 열 살 이상 많게 나온 주인공 엄마(김혜자) 친구 역으로 재기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