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55)은 4년 전에는 일본 외교관을 공격했다. 그는 2010년 7월 한 행사장에서 주한 일본 대사를 향해 손바닥만 한 콘크리트 덩어리 2개를 던졌다. 일본 대사는 겨우 피했지만 일본 여성 서기관이 맞아 부상을 입었다. 외교관에 대한 폭행은 최대 징역 5년을 받을 수 있는 중대한 범죄다. 김은 당시 폭행 등 전과 2범이었지만 법원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한 법률 전문가는 "그때 일벌백계 차원에서 실형을 선고했다면 그가 다시 외교관을 공격할 생각은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북 사상뿐 아니라 김의 잇따른 불법을 솜방망이 처벌한 허술한 공권력이 그를 결국 테러범으로 키우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기종이 6일 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은 살인미수·외국사절폭행·업무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오후 10시 40분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김은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김은 이번 테러 전까지 6차례 경찰에 입건된 전력이 있다. 그중 4차례가 사람이 많이 모인 집회·강연회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주요 인물을 폭행 혹은 위협한 경우였다. 법원의 선고는 엄벌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김이 일본 외교관을 다치게 했을 때 서울중앙지법은 '피고인이 (2010년 이전에) 벌금형으로 한 번 처벌받은 것 이외에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고, 2007년 청와대 앞에서 분신한 후유증으로 건강이 안 좋다는 점, 이 사건 행위 자체를 인정하고 앞으로 의사 표현에 신중을 기한다고 다짐한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김의 이후 행적은 법원의 선처를 비웃는 것같다. 2013년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자마자 김은 과격 행위를 다시 시작했다. 지난해 2월 13일 김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강연장에서 당시 서대문구의회 의장을 폭행해 입건됐다. 이날 신촌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을 앞두고 열린 주민 설명회에서 김은 박 시장에게 "잘못된 교통정책으로 신촌을 망쳤다"고 소리치며 거세게 항의했고, 관계자들이 말려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계속 고성을 지르며 행사를 방해했다.

김은 자신을 가로막는 서대문구의회 의장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고 뺨을 때렸다. 당시 서울시 관계자는 "김은 행사장마다 나타나 내빈을 폭행하고 침을 뱉는 등 돌출행동으로 악명이 높았고 때로는 옷을 벗고 드러눕는 추태를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의 폭행·난동은 거의 상습적이었다. 법원은 이때도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김은 지난해 5월엔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려다 경찰이 막아서자 경찰과 일본 대사의 차량에 신발과 계란을 던진 혐의(재물손괴)로 입건됐다. 사건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 "그 정도로는 재물손괴로 보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연이은 솜방망이 처벌에 기가 오른 것인지 김은 지난 1월에도 서울 서대문구 한 백화점 앞에서 소동을 벌였다. 구민 행사 차원에서 한 아이돌 그룹의 공연 준비를 돕던 공무원의 멱살을 잡고 시내버스 통행을 막았다.

경찰 조사 결과 김은 포스터를 붙이던 팬클럽 회원들에게 전단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비를 걸었고 이를 말리던 공무원들의 멱살을 잡고 밀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에 가 있다. 경찰 관계자는 "김기종 처럼 운동권 출신이나 이념에 경도돼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우리 법원이 관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의 활동을 띄워 주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이용한 정치인들의 행태가 그의 병적인 '소영웅주의'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2012년 8월 김은 국회 정론관에서 일본 방위백서 발표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강지원 전 민주당 부대변인 등이 주선한 자리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일본 대사를 향해) 내가 던진 돌멩이는 독도를 상징한다"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시민단체 대표인 그에게 경찰도 강력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 5일 미국 대사 테러 혐의로 김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도 그가 종로경찰서 주차장에 드러누워 10분간 난동을 부리자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그는 병원 이송 중에도 한·미 연합 훈련을 반대하는 각종 구호를 외쳤지만 경찰은 이를 방치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법원은 재범 가능성이나 범죄의 속성 등을 면밀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김의 지난 범행을 단순 폭행으로 판단해 약하게 처벌해왔다. 그런 선고가 되풀이되면서 김은 경각심을 갖기는커녕 더 극단적인 행위로 흐른 것"이라고 말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도 "김의 과거 범행들은 공공장소에서 주요 인물을 대상으로 한 공격인데 이는 인정욕·과시욕를 드러낸 것"이라며 "이 같은 위험성을 사전에 감지·파악할 수 있도록 사법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