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주필

2006년 12월 말쯤 영국 신문 가디언지(紙)를 읽다가 놀란 적이 있다. '(영국) 재무부의 전쟁은 오늘에야 끝났다'는 타이틀이었다. 영국이 61년 만에 미국에서 받은 원조(援助) 차관을 다 갚았다는 기사였다. 영국 같은 선진국이 무슨 원조를 받았다는 것인가.

2차 대전이 끝난 후 영국은 전쟁을 치르느라 여기저기서 빚을 낸 통에 국가 부도(不渡) 직전이었다. 외국의 원조에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안 됐다. 차관을 빌리지 않으면 당장 공무원 봉급조차 줄 수 없었다. 그때 2%라는 낮은 이자율로 무려 43억달러를 제공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지금은 선진국 클럽으로 통하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도 알고 보면 원래 미국으로부터 원조금을 받아 나눠 쓰는 나라들 모임이었다. 미국은 유럽 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달러를 따로 찍어주었다. 유럽에 부흥 자금으로 내준 달러는 미국에 다시 들여오지 못하게 송금을 막았다. 중앙은행(FRB)은 외국에 제공한 원조 자금은 장부에 'M3'라는 특별 항목에 기록했고, '유로달러'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국이 유럽·일본의 재건을 도우면서 미국 기업들의 수출 시장을 넓혀주려 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에 맞서려고 달러 원조로 자유 진영 국가들을 결속시켰다는 얘기도 맞는 말이다. 미국을 이런 시각에서만 보면 미국이 냉전(冷戰)에서 이기려고 치밀하고 의도적인 계획 아래 유럽·일본을 사실상 경제 식민지로 삼았다는 논리로 발전하기 쉽다. 그 '미국 식민지' 지도에 한국까지 그려넣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미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들을 도운 의도가 당초 그처럼 음흉한 것이었다고 치자. 이런 눈으로 보면 일부러 외채를 빌려준 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햄버거를 팔았다는 말이 된다. 어쩌면 1950~60년대 굶주린 한국 어린이들에게 옥수수 죽을 배급했던 것도 미국이 잉여 농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2차 대전 후 미국 원조를 받은 나라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미국의 원조를 고맙게 받아들인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그 원조가 미국만을 위한 속임수 지원이라고 여겼던 나라들이 있다.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인 나라들은 대부분 경제 부흥에 성공했고, 도움 뒤에 뭔가 숨겨진 뜻이 있다고 의심한 나라들은 아직도 정치 혼란,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성공 사례는 유럽·아시아에 얼마든지 많은 반면 중동과 중남미, 아프리카에서는 실패 국가의 본보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라크의 혼돈, 이슬람국가(IS)의 등장에서 보듯 미국의 잘못된 개입과 지원이 가끔은 더 큰 문제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원조의 애초 의도가 무엇이었든 한 나라의 운명은 미국의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5년 이후 1961년 사이 미국에서 31억여달러의 원조 자금을 받아 썼다. 6·25전쟁 후에는 세수가 너무 빈약해 한때는 정부 예산의 54% (1957·1958년)를 원조로 충당해야 했다. 정부가 미국이 베푼 돈으로 겨우 굴러가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이다. 역대 정권들은 미국 달러 덕분에 경제를 일으키는 데 주력해 이제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물론 미국에 대한 감사 표시가 지나쳤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냉전시대 미국의 방패막이로 6·25전쟁을 겪으며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겪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미국 때문에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베트남 전쟁에까지 동원됐다고 할 수도 있다. 군부(軍部) 독재, 광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미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역사상 최고의 번영이 과연 미국 없이 이룰 수 있었겠느냐는 사실이다. 미국은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준 것 말고도 우리 경제가 일어서는 길목에서 그토록 큰 시장을 우리 기업들에 내주었다. 미국은 아직도 수출량이 많은 중국보다 훨씬 실속 있는 시장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미국 대사를 겨냥한 테러가 종북(從北)주의자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종북 부류들보다 심각한 것은 미국을 타도 대상으로 삼는 '반미(反美)'들 이다. 금융위기 이후 잠재적 반미들도 늘었다.

때마침 일본과는 삐걱대는 파열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중국이 우리에게 접근해오는 속도나 우리가 중국에 다가가는 속도는 몰라보게 빨라졌다. 일본도, 중국도 벌써 10년 전의 일본, 1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무게중심이 미묘하게 변하는 와중에서 한국이 미국을 향해 살벌한 칼을 휘두른 꼴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 미국도 힘을 잃을지 모른다. 머지않아 미국에 감사하는 우리의 마음도 옅어지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칼을 이렇게 엉뚱하게 휘둘러서야 '한국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나라'로 평가절하 될수밖에 없다. "같이 갑시다"라는 대사의 말을 듣고 있기가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