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들로드]로 화제가 됐던 이욱정 PD의 두 번째 만찬. 요리에 숨어 있는 인류의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다큐멘터리 [요리인류]가 공개됐다. 세 번째 방송을 앞둔 오후, 점심을 거르고 마지막 편집 작업을 하고 있던 그를 만났다.
미식과 패션은 일맥상통한 구석이 있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 패션의 메카들이 알고 보면 미식가들의 성지인 경우가 많다. 편집실에서 만난 이욱정 PD는 스타일리시한 캐주얼 차림을 하고 있었다. 요란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그냥 옷장에서 가장 편안한 옷을 손에 잡히는 대로 툭툭 꺼내 입은 것 같은데, 어쩐지 느낌이 살아 있다. 세련된 영상의 요리 다큐멘터리를 찍은 PD이자 런던 요리학교 출신의 요리사이기도 한 그는 딱 그만큼의 패션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첫인사를 패션에 대한 칭찬으로 대신하자 순식간에 요리와 패션을 주제로 한 대화의 장이 열렸다. “입는 걸 잘 입는 나라치고 먹는 데서 빠지는 나라가 없고, 반대로 음식의 트렌드를 이끄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옷도 잘 입어야 한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어떻게 보면 한식은 너무 예쁘고 몸매도 좋은데 아직 옷을 잘 못 입는 사람이다. 반대로 서양, 특히 북유럽 지역은 다소 빈약한 몸과 얼굴을 가졌는데 옷을 잘 입어 빛나 보이는 것 같지 않나?”라는 촌철살인 전문가적인 멘트도 이어졌다. 이욱정 PD의 화법은 꼭 그의 다큐멘터리를 닮았다. 호흡이 빠르고 집중해서 듣게(보게) 되고, 재미있다.
음식을 통한 사람 이야기, [요리인류]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은 [누들로드] 이후 7년 만에 [요리인류]가 나왔다. 작년([빵과 서커스](1편)/[천상의 향기, 스파이스](2편)/[생명의 선물, 고기](3편))에 이어 고기, 카레, 빵 등 세 가지 음식에 담긴 인류 식문화의 비밀을 다큐멘터리 영상에 담았다. 이번에는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과 함께 세계 최고의 요리를 직접 찾는 스토리도 더해진다. 2회가 방송이 나가고 3회 방송을 앞둔 오후, 편집실에 앉아 있는 그는 기분 좋게 본인이 만든 영상을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오늘 방송이 될 [종교와 빵]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이렇게 모니터하면 감회가 새롭겠다. 요리보다는 사람이 생각난다. 편집할 때 그림을 보면, 어떤 때는 몸이 쑤신다. 촬영 당시 현장의 느낌이 살아난다. 아, 저땐 엄청나게 더웠지, 어떻게 섭외했을까, 엄청 추웠던 기억, 열 몇 시간을 이동했던 것 등등 모든 기억이 떠오른다. 아, 우리가 저걸 찍기 위해서 그렇게 고생했구나 생각도 들고. 음식보다는 요리를 해줬던 사람들의 느낌이 더 기억에 남는다.
요즘 요리 관련 콘텐츠의 지형이 많이 변했다. 놀랍도록 수준이 높아졌다. [누들로드] 나올 때만 해도 국내에 요리프로그램 자체가 거의 없었다. 케이블이라고 해도 시청자가 많지 않았고. 사실 [누들로드]도 당시에 시청률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화제가 되어서 눈덩이처럼 커진 거지. 지금은 많은 (방송) 콘텐츠에 요리가 있다.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분위기다.
[요리인류]는 방송 전부터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로그램은 내가 만든 자식이다. 내 자식을 예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좋나. 감사하다. 기대하고 기다려줬다는 한 줄의 댓글이나 시청 평이 힘이 된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고.
방송 이후에는 호평이 쏟아지니 더 좋겠다. 디테일한 것까지 놓치지 않는 시청자분들이 늘어났더라. 비교문화적으로 본다고 할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음식을 통해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으로 보는 시도에 대해서 사람들이 반기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젊은 시청자들도 늘어난 것 같고, '푸드 포르노'라는 말도 쓰더라. 보고 있으면 먹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다고 하시면서.(웃음) 나는 그 반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서부터 지적인 호기심,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촉발되는 것이니까.
"뭐가 가장 맛있었냐?"는 질문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맞다. 그런데 촬영할 때는 맛있는 거 많이 먹지도 못했다. 먹을 틈이 없다. 그리고 음식은 한국음식이 제일 맛있기 때문에. 하하.
이번 [요리인류] 시리즈의 관전 포인트는? [요리인류]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음식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음식을 통해서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의미를 만들어내고 상징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꾸며서 그걸 서로 나누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이라고 하는 주식, 밥처럼 아주 일상적인 음식에 인간이 어떤 이야기나 의미나 상징을 부여했는지 흐름을 보는 것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욱정이 꼽는 재미있는 주제는? 다 재미있다.(웃음) 그 의미가, 자식 같다는 말이다. 부모에게 "어느 아이가 제일 예뻐요?"라고 질문하는 거랑 똑같다.
시청률을 떠나서, 즐길 시기인 것 같다. 지금은 마음을 비웠지만 PD니까 시청률에 관심은 있지. 시청률이라는 게 식당의 메뉴랑 비슷하다. 요리사들 사이에서 훌륭하다고 하는 식당에 손님이 많이 가는 것은 아니다. 요리사가 혼신을 다해 최고의 재료로 만든 메뉴가 잘 팔리는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많은 분들이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요리라는 것이 문화의 중요한 일부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시청자들이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나. TV프로그램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 한식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요리인류]의 태생적인 약점이다. 예전보다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봐주셔서 감사하다. 비교문화적인 관점이 중요하다. 다른 나라 것들을 알아야 우리 것이 더 잘 보인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인류의 신문화는 큰 나무 아래에 자라서 가지를 친 것이다. 어느 하나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없다. 줄기를 찾아가는 과정은 다른 나라 음식문화를 많이 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제작비 지원(협찬)도 든든했다던데. [누들로드] 때는 협찬을 받기가 어려웠다. 이번에는 제작비의 80% 정도 지원을 받았다. 영업사원 하느라 힘들었다.(웃음) 협찬사들에게 고맙다. 드라마도 아니고 예능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몇억씩 지원해줬다는 데 고맙다.
요즘 음식프로그램이 굉장히 많다. 어떻게 보나? 프로그램 자체가 정말 많이 늘어났다.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은 다 요리, 음식이 들어 있다. 나는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요리 콘텐츠라는 것이 더 커져야 하고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너무 경쟁을 시키고 서열을 매기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다. 물론 TV적인 차원으로 봤을 때는 재미의 요소지만, 요리는 재미있고 즐거운 행위다. 누구나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각박한 세상인데 요리까지 누구는 이기고 지는 것이 되는 게 괜찮나 싶다. 요리만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느리고 틀리더라도 즐겁고, 자연이라는 고마움을 알게 해주는 그런 엄마 같은 느낌이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PD보다는 요리사의 관점이 더 큰 것 같다. 그렇게 되는 셈인가?(웃음) 요리 예능이 늘어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2년간 요리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영향을 주었나? 물론. 방송만 했으면 완전히 시각이 달랐겠지.
이욱정표 맛있는 인생 레시피
이욱정 PD 본인의 기준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지만, 그는 조금 별나게 살았다. [누들로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가 택한 것은 영국 런던으로의 요리유학이었다. 요리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 직접 요리를 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은 그의 상식 안에서 뭔가 어색한 일이었다.
이욱정의 남다른 인생도 화제가 된다. 나는 철이 없어서 그랬다.(웃음) 많이 계산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게 지르면서 산다. 보통 특집프로그램 한 번 만들고 나면 진이 빠져서 또 할 생각을 못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는 두 번 한 것도 모자라서 내년에 또 한다. [요리인류] 시즌3이다.
사람들은 그런 경우 '욕심이 많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게 보는 분들도 있던데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엄청난 파워를 얻거나 돈을 엄청나게 버는 데에도 관심은 없다. 물론 대출금을 갚아야 해서 엄청나게 일을 해야 한다.
일 욕심이 많은 건가? 그거는 있는 것 같다. 상상하는 거 혹은 생각하는 거, 그걸 직접 해봐야겠다는 마음은 좀 과잉이다.(웃음)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내가 잘하는 말 중 하나가 "좋아", "다 할 수 있어", "뭐가 문젠데?!"라고 하더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PD라는 직업이 잘 맞는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회사 다니면서 월요일이 두려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동아리방 다니는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사고과시스템도 잘 모르고 내 직급도 모른다. 회사라는 곳을 스트레스 받고 평가받는 곳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PD라는 직업 자체가 잘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해피한 편이다.
다큐멘터리 말고 다른 계획은 없나? [요리인류 키친](가제)이라고 해서 데일리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진행하는 경험도 없어서 고사를 했는데,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이것도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라서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새로운 시도가 될 것 같다. 연출을 넘어 직접 요리를 해야 하니까. 아직 구체적인 방향은 없다. 요리 한 접시에 숨은 재미난 역사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식재료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수준 있고 고급스럽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고급스러운 거라면 이욱정 PD가 잘하는 거잖나. 하하. 고급스럽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고급스러운 콘텐츠가 오래간다. 책도, 진짜 잘 만든 요리책은 비싸도 산다. 아껴서 보고 계속 갖고 싶지 않나. 그런 것처럼 웰메이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인생의 플랜은 어떻게 세우고 있나? 장기 계획을 잘 세운다. 정해놓으면 탱크처럼 잘 밀고 나간다. 단기 계획은 세워놓고 잘 잊어버리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그건 한국일 수도 있고 다른 나라일 수도 있는 문제인데, 농부가 되어보고 어부가 되어보고 싶다. 농사를 지어 그걸로 요리를 해보고 싶다. 인류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다른 나라 문화에 관심이 많다. 장기적으로는 농사를 지어서 얻은 결과물을 가지고 요리를 하는 것이 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