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화면 캡처

2006년 7월 4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반지하 집에 도둑이 들어 현금 200만원을 훔쳐갔다. 중국인 집주인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지만 현장은 CCTV도 없고, 차도 세울 수 없는 좁은 골목이라 단서가 될 차량 블랙박스 영상도 없었다. 지문도 안 남았다. 유일한 단서는 현관에 놓인 중국산 장백산 담배꽁초 2개. 담배에서 DNA를 채취했지만 경찰이 가진 DNA 데이터베이스(DB)엔 일치하는 정보가 없었다.

이듬해인 2007년 6월 1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반지하 집 출입문을 드라이버로 따고 들어간 범인이 현금 20만원과 금반지 10돈 등 총 235만원 상당 금품을 훔쳐갔다. 역시 중국인이 사는 집이었고 CCTV·블랙박스·지문이 없었다. 이번에도 현관에 장백산 담배꽁초 2개가 있었다.

범인은 지난 9년간 서울·경기 일대 중국인 밀집 지역에서 114차례에 걸쳐 1억2000만원 상당 금품을 훔치면서, 범죄 현장 현관이나 화장실마다 중국산 담배꽁초 1∼3개 또는 피우지 않은 담배 1∼3개비를 남겨, 이 사건들은 '장백산 사건'으로 불렸다.

그 범인이 드디어 잡혔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3일 청각장애 2급 한국인 전모(52)씨를 장백산 사건의 범인으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전씨는 지난달 중국인이 사는 서울 금천구 독산동 반지하 집에서 현금과 담배 등 총 119만원어치를 훔쳤다가 꼬리를 잡혔다. 골목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에 포착된 것이다.

일용직 노동과 풀빵 판매 등을 하던 전씨는 함께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로부터 "중국인은 은행 통장 만드는 게 힘들어 집에 돈을 놔둔다"는 얘기를 듣고, 중국인 밀집 지역에서 범행해왔다. 전씨는 중국산 담배꽁초를 놔둔 이유에 대해 "불안해서 버렸다"고 했지만, 경찰은 "나중엔 피우지도 않은 담배에 침만 묻혀 놓았다"며 "일종의 자신만의 의식 같은 게 아니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