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24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올 1월 터키에서 실종됐던 김 모(18)군이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에 합류해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해외 정보통을 통해 IS와 접촉, 김군을 한국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2월25일자 종합1면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IS에 합류하기 위해 시리아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미국 CIA는 그 수가 2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4400명, 아프리카에서 5700여명. 중동 5400여명, 북미 200여명입니다. 아시아에서도 400여명이 IS에 가담했습니다. 그 가운데 터키 국경에서 사라진 우리나라 김 군도 있습니다.

테러집단의 선동 구호에 매혹된 한국 젊은이가 우리나라를 떠나 테러 소굴로 들어가는 상황을 예견한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2009년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김기홍씨의 장편 ‘피리부는 사나이’입니다.

김기홍 장편소설 '피리 부는 사나이'

소설은 2004년 서울 시내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여성이 잇달아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나’의 여자친구인 수연도 서울의 한 호텔에서 화재 사건을 겪고 난 뒤 실종됩니다. 수연은 화재 현장에서 아름다운 피리소리를 듣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납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사람들이 죽어 있었고, 충격적이게도 자신이 피리 소리에 취해 불을 지른 것을 알게 됩니다. 수연은 ‘나’에게 말합니다. “나를 매혹시키는 피리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떠날거야.”

그런데 이 피리소리가 전 세계 곳곳의 테러 현장에서 울려퍼집니다. 도심 화재가 발생한 곳마다 피리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마드리드 열차 폭발사고 현장, 런던 시내 폭탄테러 현장에서도 피리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소설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새로운 가치 체계로 젊은 영혼을 인도하겠다고 자처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 가치가 '테러'라는 극단적인 폭력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지만 바로 그 폭력성이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작가는 독일 하멜른 지방의 민담인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유혹하는 테러리스트와 매혹되는 청년들’이란 테마를 떠올리고 이 소설을 썼습니다. 동화 내용 잘 아시죠? 마을의 골치덩이인 쥐떼를 퇴치하고 대가를 요구했지만 주민들에게 거절당하자 그 복수로 마을 아이들을 피리로 유혹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어린이 유괴' 이야기입니다. 이 유괴 서사의 배경으로 중세 십자군 전쟁에 뛰어든 소년병들과 그들을 이끌고 사라진 니콜라스 이야기가 꼽힙니다. 니콜라스는 마음이 순수한 아이들이 대의명분에 쉽사리 빠져든다는 점을 악용해 소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고 원정에 나섰던 아이들은 마을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소설 속 '피리부는 사나이' 역시 피리 소리로 수연을 비롯한 세계 각국 청년들을 유혹합니다. 이를 지금 상황에 적용해보면 IS 모집책인 하산이 SNS라는 피리소리로 김군을 꼬드겨 터키 국경을 넘게 한 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함께 읽어볼까요? 피리소리에 현혹된 아이들의 내면과, 피리소리에 아이들을 빼앗긴 부모의 심정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불쌍한 아이야. 이런 이상한 일에 엮여들다니…. 사려깊고 밝은 아이였는데. 나는 그 애를 원망할 생각은 없어요. 그건 그애 탓이 아니니까. 그 애도 피해자일 뿐이지.’(233쪽)

‘그 애를 잃어버린 이후로 나는 줄곧 찾아다니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그 애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만, 그 애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257쪽)

소설에서 피리부는 사나이는 ‘문을 두드리는 자들’을 지휘해 ‘새로운 세계를 여는 문’을 찾아 나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테러 행위를 문을 두드리는 행위에 비유하고 있는 걸세. 새로운 세계를 여는 문 말이지’(259쪽)

사랑하는 여자를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빼앗기고 세계 곳곳에서 테러로 인한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절규합니다.

‘인간의 악의가 만들어낸 처참한 광경들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피리부는 사나이에 의해 사라지는 사람들을. 화재와 폭발에 의해 죽어가는 사람들을.’(268쪽)

소설은 테러리스트가 들려주는 피리소리에 매혹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 남자를 만나면 궁금했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될 거야. 그렇지만 그 사람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돼. 너 자신을 잃지 마.’(276쪽)

이제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의 결말로 이 글을 맺을까 합니다.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와 아이들이 사라진 곳에 커다란 문이 있습니다. 그 문 앞에서 한 아이가 주저앉아 있습니다. 다리가 불편해 일행에서 뒤처졌던 아이입니다. 어른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울고 있습니다. 그 문을 열고 피리부는 사나이에게로 가고 싶었던거지요.

세계 각국이 IS의 유혹으로부터 자국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SNS 차단 등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피리부는 사나이와 아이들 사이에 난 문을 닫아걸자는 거지요. 그러나 수백년 전 동화가 이미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문으로 아이들과 IS 사이를 차단하기보다는 문 안쪽의 아이가 더 이상 피리소리를 갈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