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지하철을 탈 일이 있었다. 지하철은 제 할 몫으로 다양한 사람을 실어나르는데 가끔 소란(騷亂)이 나기도 한다. 어떤 엄마가 지하철을 타고 어디 바쁘게 갈 일이 있었는지 한 손으로는 아이를 번쩍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의 짐가방을 갖고 자리를 잡았다. 같은 칸에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할 일이 바빠서 대화도 오가지 않은 채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도 도착할 때까지 확인해야 할 서류가 있어서 고개를 반쯤 숙이고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 나른해질 때쯤 지하철 칸 전체를 울리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울음소리가 우렁찬지 이내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의 시선이 모두 그 아이에게로 꽂혔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엄마는 한꺼번에 자신들에 쏠린 시선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칠 줄을 모르자 엄마는 짐가방을 급하게 뒤적거리더니 비장의 무기처럼 사탕을 꺼냈다. 아이는 입으로는 울면서 조그만 손으로는 엄마의 손에 들려 있는 사탕을 쥐어가기에 바빴다. 그렇게 사탕 하나를 손에 쥔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울음을 그쳤다. 사탕을 입에 넣은 아이가 잠잠해지길래 건성울음인가 싶었다. 근데 조금 뒤에 아까보다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는 결국 다음 역에서 아이와 함께 내려버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기란 쉽지 않다. 나도 두 아들을 키워봤고, 지금은 여섯 살짜리 늦둥이 딸을 기르고 있는데 우는 아이 달래기가 제일 어렵다. 한번은 딸이 무엇에 언짢았는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어댔다. 그동안 울 때마다 먹혀들었던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달래봤지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도대체 저 아이가 왜 저렇게 우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왜 우는지 이유를 알아야 달랠 방법도 찾아볼 텐데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할지 몰랐다.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키워낸 부모라면 막무가내로 우는 아이 앞에서 황당한 그 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우는 아이를 달래 본 한 가지 방법이 통하면 부모들은 계속 그 방법을 쓰게 된다. 지하철에서 만난 엄마가 비장의 무기로 사탕을 꺼냈던 것처럼 말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콜롬비아에 태어난 지 8개월 된 아이가 무려 20㎏에 가까운 몸무게를 가지게 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 살도 안 된 아기가 터무니없는 몸무게를 가지게 된 것은 아이의 엄마가 울 때마다 먹을 것을 줘서 달랬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사에 실린 사진 속의 아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아이에게는 생명에 위협을 줄 정도의 병이 생겼고 급하게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려다 병을 얻게 했으니 오히려 아이를 망치게 된 꼴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우는 애도 속이 있어 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무런 이유 없이 우는 아이가 없다는 뜻인데 겉으로 나타난 행동에는 숨은 속뜻이 있다는 옛 어른들의 조언이다. 그래서 먼저 아이의 속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달래면 어리석은 대처를 할 수밖에 없다. 현명한 보호자는 우는 아이의 속을 들여다보고 그에 따라 지혜롭게 대처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렇게 어린아이는 울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속뜻을 표현한다. 그런데 울음으로 말을 대신하지 않는 어른도 가끔은 울고 싶다. 어른의 울음은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상대방에게 알리고 싶을 때 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우는 어른은 정신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정신력이 약하니까 뭐든 이겨내지 못하는 겁쟁이라고 핀잔을 준다. 그 소리가 달갑지 않은 어른은 울고 싶어도 속으로 울음을 삼킨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속울음은 더욱 만목처량(滿目凄凉)한 법이다. 울음소리가 입 밖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우는 어른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엄마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즉각 반응을 보이듯이 우는 어른을 달래 줄 보호자가 필요하다.

우는 이에게 가장 현명한 보호자는 먼저 귀를 열어서 울음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읽어내는 사람이다. 그가 왜 이렇게 서럽게 울어야만 했는지 복잡다기(複雜多岐)한 속을 헤아려야 한다. 자칫 섣부르게 달래다가는 큰 실수가 될 수도 있고, 서로의 감정싸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 속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느냐마는 현명한 보호자의 능력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애타는 사랑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그 사랑은 진정한 위로를 낳고, 그 사랑으로 다시 일어서는 생명력(生命力)을 선물할 수 있다.

바람이 단내를 풍기는 봄이 오고 있다. 봄에 부는 바람은 엄마의 품에서 나오는 온기(溫氣)가 있다. 그래서 겨우내 시달린 땅을 단내 가득한 봄바람이 어루만지면 새싹이 움튼다. 어디선가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있을 이에게 봄바람 같은 온기로 따뜻하고 단내 나는 위로를 전하고 싶다. 사랑의 힘으로 우는 이들을 위한 현명한 보호자가 되어 절망에서 희망을 싹 틔우는 봄의 생명력을 함께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