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에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모두 서울에서 태어난 재외교포가 차지했다.

22일 미 LPGA 투어 호주여자오픈에서 투어 6승째를 거둔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8·한국 이름 고보경)가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천재 소녀라면 23일(한국 시각) 미 PGA 투어 노던트러스트오픈에서 처음 PGA 정상에 오른 재미교포 제임스 한(34·한재웅)은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꿈을 향해 달려온 입지전(立志傳)적인 골퍼다.

제임스 한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 컨트리클럽(파71·7349야드)에서 막 내린 노던트러스트 오픈 4라운드에서 2타를 줄여 합계 6언더파 278타를 기록해 더스틴 존슨(미국), 폴 케이시(잉글랜드)와 연장에 들어간 뒤 3차 연장에서 존슨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제임스 한이 23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노던트러스트 오픈에서 우승한 뒤 “이렇게 유명한 선수가 많이 나온 대회에서 우승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최종 라운드는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선수들이 막판 실수를 연발하면서 연장에 들어간 3명 말고도 공동 4위 세르히오 가르시아(5언더파), 공동 8위 배상문(4언더파), 공동 12위 비제이 싱(3언더파) 등 10여명이 우승 경쟁을 벌인 대혼전이었다. 18번 홀(파4)과 10번 홀(파4), 14번 홀(파3)을 돌며 치러진 연장전 가운데, 케이시가 2차 연장에서 먼저 탈락했다. 14번 홀(파3·192야드)에서 열린 3차 연장에서 제임스 한은 티샷을 그린에 올렸지만 홀까지 약 7.5m가 남았다. 존슨은 3.6m 거리에 공을 올렸다. 하지만 제임스 한이 먼 거리에서 먼저 버디를 잡고 난 뒤 존슨이 실패해 우승이 결정됐다.

PGA 투어 65번째 대회 만에 처음 우승을 거둔 제임스 한은 "이렇게 훌륭한 선수가 많이 참가한 대회에서 우승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가슴 벅찬 표정을 지었다.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제임스 한은 샌프란시코 인근 오클랜드에서 골프 연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네 살 때 골프채를 잡았다.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연습장에서 훈련했지만 골프 코스에는 자주 나가보지 못했다. 클럽도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구입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처음 골프를 배운 뒤로는 따로 코치를 두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유명 코치들의 레슨 동영상을 찾아보며 스윙을 다듬었다.

UC버클리를 졸업한 2003년 프로로 전향해 지역의 미니 투어를 뛰기도 했지만 돈이 없어 프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할 때가 잦았다. 그럴 때마다 광고회사 직원, 부동산 중개업자 등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구했다. 한동안 백화점 여성용 신발가게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기도 했다. 제임스 한은 "구두 파는 일에는 정말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활동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2008년부터 2년간 캐나다 투어에서 뛰었다.

대회 도중에도 일자리를 찾아야 할 정도로 곤궁했던 제임스 한은 "한번은 대회에 나갔는데 통장 잔액이 200달러가 채 되지 않았다. 캐디피를 주기에도 부족한 돈이었다. 골프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 대회에서 8위를 해 상금 3000달러를 받았다. 그는 "당시 3000달러는 100만달러를 받은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PGA 2부 투어 대회 우승으로 마침내 PGA 투어 출전권을 따냈다. 그는 "꿈을 잃지 않는 한 PGA투어에서 뛸 기회는 열려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제임스 한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유행이던 2013년 피닉스오픈 4라운드 16번 홀에서 버디를 잡은 뒤 싸이의 '강남 스타일' 말춤을 추면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유튜브 조회 수가 34만건을 넘어섰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성적은 투어 카드를 간신히 유지하는 정도였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제임스 한은 상금 120만6000달러(약 13억4000만원)를 받았다. 또 4월에 열리는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와 2016-2017시즌 PGA 출전권까지 확보했다. 제임스 한은 "3주 후에 딸이 태어나 아버지가 된다는 점이 더욱 흥분된다"며 "딸 이름을 이번 대회가 열린 골프장 이름 리비에라로 지어야 할지 아내와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는 또 "아내가 13만마일이나 달린 2005년형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내조를 해줬는데 새 차를 선물해야겠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