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로축구 레버쿠젠의 손흥민(23)이 해트트릭을 폭발시키며 '위대한 전설' 차범근(62)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손흥민은 15일(한국 시각) 독일 레버쿠젠의 바이아레나에서 볼프스부르크와 벌인 2014~2015시즌 분데스리가 21라운드 홈 경기에서 0―3으로 뒤져 있던 후반전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10분 동안 세 골(후12·17·22분)을 꽂아 넣었다. 지난해 11월 22일 하노버96전 이후 약 3개월간의 골 침묵을 끝낸 생애 두 번째 해트트릭(첫 번째는 지난 시즌 함부르크전)이었다. 이날 손흥민은 자신의 한 시즌 최다골(12골) 기록을 깨고 시즌 14호골을 넣었지만 팀이 4대5로 패하는 바람에 활짝 웃진 못했다. 레버쿠젠이 홈구장에서 볼프스부르크에 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흥민은 "해트트릭은 중요하지 않다. 팀이 이기는 것이 중요한데 아깝게 져서 동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차붐' 신화를 넘어선다
손흥민은 유럽 무대에 진출한 한국인 공격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기록 제조기'다. 손흥민은 함부르크 시절이던 2010년 분데스리가 데뷔전에서 만 18세 3개월 22일의 나이로 데뷔골을 터뜨리며 39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팀 내 최연소 리그 득점 기록을 갈아 치웠다. 올 시즌엔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원정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한국인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멀티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흥민이 한국이 배출한 유럽리그 최고의 공격수가 되려면 차범근을 넘어야 한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손흥민이 태어나기 한참 전인 1978년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11시즌(372경기) 동안 121골을 넣었다. 특히 리그에서만 단 한 번의 페널티킥 없이 98골을 넣었다. 이는 스테판 샤퓌자(스위스)가 1999년 통산 106골을 기록하기 전까지 분데스리가 역사상 외국인이 넣은 최다골 기록이었다.
차범근의 골 감각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는 그가 32~33세였던 1985 ~1986시즌이다. 당시 레버쿠젠 소속이던 차범근은 리그 34경기에서 17골, DFB포칼(FA컵) 4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총 38경기 19골을 기록했다. 이는 아직도 분데스리가에서 아시아 선수가 세운 한 시즌 최다골 기록으로 남아 있다. 손흥민이 남은 시즌 동안 5골만 더 넣으면 차범근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한국인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았던 박지성(34)도 이날 "요즘 손흥민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어서 기분 좋다"며 "지금 같은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 유럽 어느 팀이라도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데스리가 정상급 공격수
손흥민은 이날 해트트릭으로 리그 개인 득점 26위에서 9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손흥민과 함께 공동 9위(8골)에 올라 있는 선수로는 리그 최강 바이에른 뮌헨의 원톱 스트라이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리그 도움 1위(12도움)를 달리는 볼프스부르크의 케빈 더브라위너 등이 있다. 더브라위너는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에게 먼저 다가와 유니폼 교환을 요청하기도 했다. 손흥민은 득점 공동 선두(14골)인 아리연 로번(뮌헨), 알렉산더 마이어(프랑크푸르트) 등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독일이 자랑하는 스타플레이어 토마스 뮐러, 마리오 괴체(이상 뮌헨·9골)와는 불과 1골이 적을 뿐이다.
2012~2013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24골)을 차지했던 레버쿠젠의 간판 스트라이커 슈테판 키슬링은 올 시즌 4골에 그치며 상대적으로 저조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키슬링은 지금까지 동료들의 패스 지원을 한몸에 받았지만, 지난해 7월 새로 부임한 로저 슈미트 감독이 득점 루트를 다각화하면서 새 전술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 대신 올 시즌 새로 합류한 카림 벨라라비와 하칸 찰하노글루는 각각 9골, 5골을 넣으며 팀의 새 주축으로 떠올랐다. '비(非)게르만 혈통'인 이들은 손흥민과 함께 레버쿠젠 인근의 한인 식당을 자주 찾아 불고기를 먹고 축구 게임도 함께 즐기며 '레버쿠젠 삼총사'로 불리고 있다. 벨라라비는 자신의 SNS에 손흥민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나의 형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