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과 성관계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사회자가 묻는다. ‘아니요’라고 대답을 못하면 보드카 한 잔을 원샷해야 한다. 네덜란드 공영방송 BNN에서 2005년부터 인기리에 방영 중인 ‘Shoot&Swallow’의 한 장면. 일반인이 알몸으로 나오고, 밀실에 들어가 실제 성관계까지 한다. 지난 8일 첫 방송해 오는 15일 마무리되는 SBS 2부작 다큐멘터리 ‘쇼에게 세상을 묻다’는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레바논·일본·미국의 TV쇼를 찾는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20년 경력 김종일 PD와 함께 들여다봤다.

문화 DNA 담긴 TV쇼

김 PD는 "TV쇼엔 그 사회의 문화적 특징이 담겨 있고, 이걸 분석해 그 사회를 해부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Shoot&Swallow'에선 사회자가 마약을 한 뒤 품평까지 하는데, 이 프로 마야 브라운 PD는 "섹스·마약의 장단점에 대한 정보 제공 차원"이라 말한다. 언론 자유도 1위(프리덤하우스·2014)답게 여왕의 얼굴을 원시 부족의 몸통에 갖다 붙이는 등 풍자에도 성역은 없다. 이런 '쇼의 자유'엔 자연재해(홍수) 앞에서 모두가 협력해야 했던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 묻어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노르웨이 '슬로TV' 'Minutt For Minutt'는 6박7일 크루즈 여행, 2박3일 찬송가 부르기 등을 생방송으로 보여준다. 자막도 내레이션도 없다. 그런데 시청 점유율이 40%에 달한다.

네덜란드‘Shoot&Swallow’의 한 장면. 일반인 남성 출연자 3명이 발가벗은 채 자신의 콤플렉스를 고백하고 있다. 한국에선 모자이크 처리됐다.

세상을 바꾸는 TV쇼?

유전자를 물려받기만 하는 건 아니다. 레바논에서 2003년부터 대박 행진을 잇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아카데미'. 2005년 쿠웨이트의 여성 참정권 인정에도 이 쇼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2011년부터 중동 지역에 방영 중인 '아랍 아이돌' 역시 마찬가지. 2013년 이 프로 우승자인 팔레스타인 출신 하메드 아사프는 곧장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러다 보니 TV쇼를 위한 학원까지 등장했다. 김 PD는 "미국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도 장기 및 리액션 요령을 가르치는 학원이 생겼다"며 "TV쇼가 사회에 새로운 유전 형질을 만들어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국의 TV쇼는?

13년째 연말에 방영되는 일본 NTV '절대로 웃으면 안 되는 24시'는 연예인을 불러다 마취하고 때리는 등 별별 고문을 해도 용인된다. 여기엔 혼네와 다테마에, 즉 (TV의) 속과 겉이 다를 수 있음에 대한 이해가 녹아 있다. 한국은 다르다. 김 PD는 "한국에선 TV가 도덕성과 생각의 방향을 규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 국내용 다큐는 앞선 네덜란드 프로를 소개했다는 이유로 '19금'으로 결정됐다가 상당량의 편집을 통해 '15금'이 됐다.

한국식 쇼를 규정짓는 큰 특징이 바로 자막. 국어학계 학술지 ‘한국어 의미학’에 게재된 ‘TV 예능 프로그램 자막의 언어 사용 양상 연구’는 “(자막이) 해석과 평가를 연출자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작용적 텍스트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김 PD는 “심지어 개 한 마리의 생각까지 자막으로 표기한다”면서 “유럽에서는 시청자의 권리를 뺏는 비윤리적 행위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