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중이던 1959년 1월 30일, 문교부가 '어린이 훌라 후프 금지령'을 내렸다. '골반을 격렬하게 움직여 탈골(脫骨)을 부를 수 있으며 혈액순환과 소화에도 장해를 일으킨다'는 보건사회부 견해에 따라, '철저히 금지'하라고 시·도에 지시했다(조선일보 1959년 1월 31일자). 1958년 8월 미국에서 시작된 훌라후프 열풍은 같은 해 연말 한국에 상륙해 인기가 폭발하고 있었다. 가장 많이 갖고 노는 어린이들에게 금지령을 내렸으니 몇 달 만에 철퇴를 맞은 것이다.

1992년 TV 드라마‘아들과 딸’에서 미연(채시라)과 엄마(고두심)가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다. 이 드라마 방영 이후 훌라후프 돌풍이 다시 불었다.

정부는 건강을 내세웠지만, 운동기구에 대한 이례적 금지령까지 내린 이유가 오로지 건강 때문이었을까. 당시 신문을 보면 '하반신을 돌리는 서양 운동 기구'에 대한 일각의 거부감도 퇴출에 한몫했던 듯하다. 한 신문은 '하와이 춤 모양으로 궁둥이를 내젓는'이 물건이 '수천 년 동안 잠잠히 깃들인 동양적인 생리에 일대 쇼킹을 일으키고 있어 각계에서 반발적인 소리도 높다'고 우려했다(경향신문 1958년 12월 9일자). '몸에 해로운지 어쩐지는 별문제로 하고라도, 운동 중에서는 천하에 점잖지 못한 운동'이라며 거부감을 대놓고 드러낸 신문도 있었다(동아일보 1959년 1월 17일자). 미국에서도 처음엔 일부 어른들이 '그렇게 천박한 몸짓을 보이다니…'라며 아이들을 야단쳤다니 우리의 거부감은 당연했다. 뜨겁던 열기가 1960년쯤부터 식기 시작하더니 30여 년간 훌라후프 붐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서양에서 건너온 유행 중 그 인기가 짧은 시간에 이토록 극심한 부침(浮沈)을 보여준 경우도 드물다. 1970년대 신문들은 '살림의 지혜'란을 통해 집 안에 굴러다니는 훌라후프를 잘라서 옷걸이나 만들라고 권했다.

그러던 훌라후프가 이 땅에서 부활한 건 1990년대 초반이다. 처음엔 지방 축제 등에서 선보였다. 전국적 유행에 결정적으로 불을 댕긴 건 TV 드라마였다. 1992년 10월부터 방영되며 60% 안팎의 경이적 시청률을 올린 '아들과 딸'에서 부잣집 모녀로 나온 채시라와 고두심이 집 마당에서 훌라후프를 신나게 돌려대는 걸 본 사람들이 전국의 체육용품점에 몰려들었다(조선일보 1993년 7월 23일자). 총선 유세전이 뜨겁던 1996년 3월 김홍신 민주당 대변인은 대학로 한복판에서 훌라후프를 돌렸다. 이제 훌라후프 금지령은 젊은 세대에겐 이해조차 힘든 일이 됐다. 반 세기 전 당국이 어린이들의 사용을 금지했던 이 운동기구는 지금 여러 초등학교에서 체육 교재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