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사회' 대한민국에서도 특히 고령자가 많은 강원도는 2020년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게 된다. '초고령 사회'다. 노년 부양비도 2040년 75.1%까지 치솟게 된다는 통계청 자료가 있다.

초고령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의료. 흔히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하지만 병원을 찾기 힘든 고령자가 많고, 노인들이 산촌·어촌 등 오지에 흩어져 사는 강원도에서는 의료진이 환자 집에 '왕진'을 간다. 강원도 현실에선 불가피한 일이다.

이 왕진사업은 강원도 18개 시·군 보건소가 맡고 있고, '방문 건강관리 사업'이라 불린다. 고령자는 물론 조손(祖孫) 가정, 독거 노인, 기초생활자, 결혼 이민자, 탈북자 등이 대상이다. 매달 한 번 방문해 고혈압·혈당 등을 체크하고 목욕도 시켜준다. 휴전선과 맞닿은 강원도의 대표적 오지 고성군 보건소는 작년 방문간호사 5명과 소장 등 9명이 1만475회 노인 등을 방문했다.

강원도 고성군 보건소 박새나 간호사가 검진을 위해 박순균 할아버지 집을 방문해 대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이 '찾아가는' 사업에 변화가 일고 있다. 홀로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을 도우미(요양보호사)가 방문하거나, 전문시설에 입소시키는 '장기요양보험'이 확산되면서부터다. 고령 환자들의 요양원 입소로 방문 간호 대상이 줄면서, 의료에만 치중하기보다 생활에 불편이 없는지까지 살피는, 의료와 복지를 융합한 '연계 활동'으로 사업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적 현상이긴 하지만, 특히 노인이 많은 강원도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함박눈이 쏟아지던 지난달 27일, 봉포 해변이 불과 30m 앞에 있는 고성군 토속면 봉포리의 해안가 노인 환자들을 고성군 보건소가 찾았다. 박새나(31) 간호사는 박순균(81) 신명자(76)씨 부부의 혈당·혈압을 측정하곤 바로 '연계 활동'에 들어갔다.

"싱크대는 고쳤나요. 1년 전에 조사했다던데. 지붕 고쳐준다고 사진도 찍어 갔다면서요. 아직 소식이 없어요? 제가 다시 한 번 '연계'할게요."

한 달 전 셋째 아이를 출산한 다문화가정 펌코소파펀(31·태국)씨에겐 이렇게 조언했다. "보건소에서 모자 보건사업을 하는데 자궁암하고 초음파 검사를 해요. 영유아 예방접종도 하니까 와서 받으세요. 날짜는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설마? 할아버지 아직도 담배 피우세요? 고성 오실 때 보건소 2층에 들르세요. 금연클리닉 해요. 6개월 성공하면 5만원짜리 상품도 드리고."

군청에서는 '통합 사례 회의'가 열리고, 왕진 결과 얻은 정보가 보고된다. 그 결과로 집수리 사업, 독거 노인 도시락 지원, 임신한 다문화 가족에 대한 모자보건 사업이 이뤄진다.

하지만 고성군 노인들은 '연계 사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의료진들의 왕진으로 말벗을 얻게 됐다는 점이라 한다. 산촌·어촌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반 병원에 비해 특별한 것은 의료진과의 대화 시간이 무척 길다는 점이다. 태국의 결혼이민자 펌코소파펀씨와의 만남은 무려 30분가량 이어졌다.

의료진이 방문하자 독거 노인 김지연(86) 할머니는 "목 빠지게 기다렸다"며 반가워했다. 의료진이 온다는 소식에 이 집에는 김복순(80) 할머니도 놀러 와 있었다. "서울의 동생집에 안 가시느냐"는 질문에, 별명이 공주님인 김지연 할머니 인생사가 하나 둘 드러났다.

"내가 서울에서 청운국민학교 졸업했어. 집도 중앙청 바로 옆이었지. 현대그룹에서 강원도의 집 봐달라고 해서 왔다가 눌러앉아 버렸어."

조손가정인 박순균 할아버지는 "중학생 손자는 학원 갔느냐"는 질문에 말문이 터졌다.

"생각 좀 해봐. 손자놈 앞으로 한 달에 50만원 나오잖아. 그런데 학원비가 30만원 들어가. 점심은 학교에서 준다고 하지만, 학원 다니다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사 먹어야 하잖아. 그럼 돈이 없어. 그런데 어떻게 병원 다녀."

환자와의 대화는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지난 2일 조손가정의 할머니를 돌보러 나갔던 의료진은 "손녀 애가 자꾸 자살하려 해"라는 말을 듣고는 사회복지사와 정신센터에 연락했고, 3일 의료팀이 할머니 집을 방문해 상담했다.

간호사들은 의료와 말벗 돼주기 외에는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워 '솔잎사랑'이란 단체를 만들었고, 돈을 모아 10가정에 라면과 쌀을 제공하고 있다. 고성보건소에서 방문건강사업을 관리하는 임희영(41)씨는 "사업이 축소되는 것 같아 아쉽다"며 "사업 방향을 전환해 고령자에 대한 서비스가 계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